[천자 칼럼] 투키디데스의 함정
“충돌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으며, 상호존중하고, 협력해 윈윈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제안한 ‘신형 대국관계론’이다. 그는 취임 전부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미국이 중국을 G2(주요 2개국)로 대접하라”고 요구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국가가 기존 패권 국가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위협할 때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아테네(신흥 세력)와 스파르타(지배 세력)의 전쟁 과정을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저자 투키디데스 이름에서 따왔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주요 동인(動因)으로 이해관계, 두려움, 명예 세 가지를 꼽았다.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그레이엄 앨리슨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은 《예정된 전쟁》에서 “지난 500년간 신흥 세력과 지배 세력의 충돌 사례 16개 중 12개가 전쟁으로 번졌다”며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 17번째 사례로 봤다.

양측의 이해관계 부문부터 따져보자.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18%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는 7년마다 두 배로 성장하고 있다. 속도는 미국의 3배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752억달러(약 400조원)다. 올해는 4000억달러(약 42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대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는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도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미국 채권 최대 보유국으로서 ‘미 국채 매각’ 카드마저 동원했다. 중국은 2049년까지 경제·군사력에서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결국 ‘두려움’과 ‘명예’ 문제까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1930년대 대공황 직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후버 대통령이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최대 59.1%의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 홀리법’에 서명하자 영국 등이 관세 인상에 나서면서 국제무역 규모가 3분의 1로 줄었다.

일부 학자들은 ‘투키디데스 함정’뿐만 아니라 ‘킨들버거 함정’까지 걱정한다. 찰스 킨들버거 교수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기존 패권국 영국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이 신흥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대공황이라는 재앙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국제 관계는 냉엄하다.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할 수 있는(can) 일을 하지만, 약자는 그들이 해야만 하는(must)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은 원치 않아도 해야만 하는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 자고 나면 외교 안보·통상 전략이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걱정만 앞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