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미국의 이라크 전쟁 15주년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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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L 준동의 빌미 됐다는 이라크 전쟁
경제 초토화하고 수니·시아파 갈등 증폭
북핵 문제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경제 초토화하고 수니·시아파 갈등 증폭
북핵 문제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곧 15주년을 맞는다. 오늘날 중동의 혼란은 물론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IL) 같은 테러조직이 준동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이라크 전쟁은 중동 현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부도덕하고 실패한 전쟁이다. 당초 전쟁 명분은 이라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위반해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 국민에 대한 잔혹한 학살과 박해로부터 독재자 제거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립, 9·11 테러 배후 세력 응징과 정의의 심판 등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일방적인 폭격으로 4월9일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42일 만인 5월1일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후 미국은 2011년 12월15일까지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했다. 침공 직후 미국과 영국, 호주 정보기관이 중심이 된 ‘이라크 사찰단’은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다. 이들은 1년이 넘는 활동 끝에 2004년 10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1000쪽 분량의 최종보고서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무엇보다 9·11 테러 배후에 사담 후세인이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판단은 당시 학계에서는 거의 믿기지 않는 충격이었다. 이슬람 과격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 세속적인 아랍민족주의 성향의 사담 후세인 및 바트당 정권이 협력관계라는 주장은 상식을 뛰어넘는 심각한 사실 왜곡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국제인권단체는 전쟁 당사자인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ISIL 생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이 ISIL의 부상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에는 거의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ISIL을 만든 책임을 져야 할 미국 대통령이 있다면 그건 이라크를 침공해서 알카에다를 만든 조지 W 부시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브루스 리델의 말이다. 영국에서도 2016년 ‘칠콧 보고서’의 결과에 따라 이라크 참전 전몰군인 유가족들은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를 전범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7년간 존 칠콧 경이 조사한 보고서는 ‘이라크는 영국에 임박한 위험이 아니었으며, 이라크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정보는 모두 과장되거나 조작된 것이었다. 블레어 총리의 참전 결정으로 15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과 100만 명의 난민을 초래했으며, 영국에 이슬람 급진주의 및 알카에다의 위협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영국의 참전 결정은 법적으로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에서 수니·시아파의 차이는 권력을 노리는 지도자들에 의해 수시로 악용됐지만, 절대다수 국민에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 사이는 서로 장사하고, 필요한 지식을 나누고 심지어 통혼이 가능한 관계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두 종파는 화합할 수 없는 적대세력이 됐다. 물과 전기, 아이들의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일상의 사투를 벌여야 하고, 어둠이 깔리면 집 밖에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오히려 후세인 정권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민심이 퍼져나갔다. 배급제를 완전 철폐하고 ‘충전식 현금카드’를 배포했는데, 시스템과 기계가 망가진 곳에서 카드 도입은 탁상행정의 압권이었다. 생필품이 바닥난 상황에서 금연 캠페인까지 펼쳐졌다. 모스크라는 신성한 종교 공간이 수시로 군홧발에 짓밟히는 모욕도 한계에 달했다.
문화적 몰이해와 오만, 무정부에 가까운 이런 혼란 상태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조직이 부족연대와 종파결성체다. 후세인 잔존세력 중심으로 알카에다와 ISIL이 생겨난 직접적인 배경이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핵문제를 풀어야 하고, 통일을 앞두고 북한을 다루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미국과 영국의 일방적인 폭격으로 4월9일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42일 만인 5월1일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후 미국은 2011년 12월15일까지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했다. 침공 직후 미국과 영국, 호주 정보기관이 중심이 된 ‘이라크 사찰단’은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다. 이들은 1년이 넘는 활동 끝에 2004년 10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1000쪽 분량의 최종보고서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무엇보다 9·11 테러 배후에 사담 후세인이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판단은 당시 학계에서는 거의 믿기지 않는 충격이었다. 이슬람 과격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 세속적인 아랍민족주의 성향의 사담 후세인 및 바트당 정권이 협력관계라는 주장은 상식을 뛰어넘는 심각한 사실 왜곡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국제인권단체는 전쟁 당사자인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ISIL 생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이 ISIL의 부상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에는 거의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ISIL을 만든 책임을 져야 할 미국 대통령이 있다면 그건 이라크를 침공해서 알카에다를 만든 조지 W 부시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브루스 리델의 말이다. 영국에서도 2016년 ‘칠콧 보고서’의 결과에 따라 이라크 참전 전몰군인 유가족들은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를 전범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7년간 존 칠콧 경이 조사한 보고서는 ‘이라크는 영국에 임박한 위험이 아니었으며, 이라크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정보는 모두 과장되거나 조작된 것이었다. 블레어 총리의 참전 결정으로 15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과 100만 명의 난민을 초래했으며, 영국에 이슬람 급진주의 및 알카에다의 위협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영국의 참전 결정은 법적으로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에서 수니·시아파의 차이는 권력을 노리는 지도자들에 의해 수시로 악용됐지만, 절대다수 국민에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 사이는 서로 장사하고, 필요한 지식을 나누고 심지어 통혼이 가능한 관계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두 종파는 화합할 수 없는 적대세력이 됐다. 물과 전기, 아이들의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일상의 사투를 벌여야 하고, 어둠이 깔리면 집 밖에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오히려 후세인 정권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민심이 퍼져나갔다. 배급제를 완전 철폐하고 ‘충전식 현금카드’를 배포했는데, 시스템과 기계가 망가진 곳에서 카드 도입은 탁상행정의 압권이었다. 생필품이 바닥난 상황에서 금연 캠페인까지 펼쳐졌다. 모스크라는 신성한 종교 공간이 수시로 군홧발에 짓밟히는 모욕도 한계에 달했다.
문화적 몰이해와 오만, 무정부에 가까운 이런 혼란 상태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조직이 부족연대와 종파결성체다. 후세인 잔존세력 중심으로 알카에다와 ISIL이 생겨난 직접적인 배경이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핵문제를 풀어야 하고, 통일을 앞두고 북한을 다루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