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유독 많은 여자 주인공을 그의 작품을 통해 희생시켰다. ‘마농 레스코’에서는 허영심 많은 여주인공 마농이 정부(情夫)의 고발로 사막에서 목숨을 거두고, ‘토스카’의 여주인공은 악랄한 권력자에게 속아 애인을 잃자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런가 하면 ‘나비부인’의 여주인공은 사랑의 맹세를 믿고 한 남자를 기다렸지만 끝내 변심한 사랑을 알게 돼 자결한다.

다른 캐릭터도 있다. 오페라 ‘투란도트’가 그것이다. 투란도트는 중국의 공주 이름이다. 이 공주는 ‘얼음공주’라고도 불리는데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 때문이다. 단지 성격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은 아니다. 공주의 아름다움 때문에 외국의 많은 왕자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공주는 이들에게 항상 세 개의 수수께끼를 내며 이것을 풀어낸 자만이 자신과 결혼할 수 있다고 공포했다. 단, 문제를 풀지 못한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세 개의 수수께끼는 이렇다. 첫 번째는 ‘어두운 밤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원하는 환상,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 것은?’ 두 번째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며, 너의 삶이 다하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른다. 석양처럼 붉은 것은?’ 마지막 문제는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대가 타오를수록 차가워지는 얼음,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삼으면 그대는 왕이 된다. 이것은 무엇인가?’다. 각각의 답은 ‘희망’, ‘피’, 그리고 ‘투란도트’였다. 이것을 남자 주인공인 칼라프 왕자가 맞히면서 투란도트 공주는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녀가 세 개의 수수께끼를 내며 많은 왕자를 희생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그녀의 할머니가 외세의 침입으로 이방의 군대에 능욕당하고 결국 죽음을 맞았던 사건 때문이다. 이때의 상처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내 이방의 청혼자들에게 앙갚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을 모두 맞힌 칼라프 왕자는 이런 공주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수수께끼를 맞혔지만 결혼할 수 없다고 강하게 거부하는 공주에게 오히려 다음날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자신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이름을 알아야만 하는 숙제 때문에 공주와 도시의 사람들은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때 부르는 테너 아리아가 그 유명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다. 결국 왕자는 공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며 차가운 그녀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왕자의 이름을 맞혀야 하는 자리에서 공주는 그의 이름을 ‘칼라프’라고 부르지 않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왕자가 배려와 이해심으로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는 결말이다. 투란도트는 차갑고 냉혈한 여성이지만 그녀의 깊숙한 마음속에도 사랑이 들어 있었다. 투란도트라는 수수께끼의 마지막 답은 사랑을 의미한다.

세상이 아름답게 유지되려면 사랑은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사랑을 꿈꾸며 우리는 첫 번째 문제의 답인 ‘희망’을 가지고 살고,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문제의 답인 ‘피’로 상징되는 배려와 때로는 희생도 필요하다. 왜곡된 사랑과 이기심이 ‘미투’ 운동에 불을 지폈다. 건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희생과 배려를 통한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