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의미 있는 실험이 첫 발을 내디뎠다. 연세대와 포스텍(포항공대)은 학점교환, 강의공유, 연구협력, 공동학위까지 표방하는 ‘공유캠퍼스’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손을 맞잡은 양교 총장은 “경계를 넘어 힘을 합쳐야 대학이 직면한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전(입학자원 감소)과 응전(글로벌 경쟁)’이란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두 대학은 차이점이 많다. 종합대와 과학기술특성화대, 대규모와 소규모, 서울과 지방 소재, 종교(기독교)와 기업(포스코) 재단, 1885년과 1986년 개교… 연세대와 포스텍은 이렇게 다르다.

차이를 더 큰 시너지의 요건으로 인식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프랑스 인문계 명문 소르본느대와 이공계 명문 퀴리대가 통합한 사례,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하버드 의대가 하버드 공대가 아닌 MIT(매사추세츠공대)와 협력한 사례를 들어가며 ‘경계 밖 이질성끼리의 결합’에 방점을 찍었다.

핵심키워드를 추출하면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과 ‘이종교배(異種交配)’다. 두 대학뿐 아니라 미래 대학 모두의 생존조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은 “왜 최고의 기술과 경영능력에도 성공기회를 놓쳤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제록스 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 사례를 연구한 헨리 체스브로 UC버클리 교수는 기존 관행에 따라 아무리 잘하더라도 폐쇄형 혁신 그 자체의 한계가 있다는 데 주목했다. 제록스는 최고 인재들을 모았다. 기술 역량을 착실히 쌓았다. 연구개발(R&D)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회사 경영 또한 효율적이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실제로 PARC는 레이저프린팅, 분산컴퓨팅, 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 워드 프로세서 같은 유망기술을 연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부가가치 창출에는 실패했다. 회사 주력사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혁신기술의 사업기회를 찾지 못한 탓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이러한 ‘내부’와 ‘독점’ 구조를 ‘개방’과 ‘활용’으로 바꾼다.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유연하게 사업화한다. 기술혁신에만 집착하지 않고 비즈니스모델에 집중하는 것이다.

5일 '공유캠퍼스' 협력을 선언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왼쪽)과 김도연 포스텍 총장. / 사진=연세대 제공
5일 '공유캠퍼스' 협력을 선언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왼쪽)과 김도연 포스텍 총장. / 사진=연세대 제공
오픈이노베이션은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포스텍은 높은 수준의 연구력과 인프라를 갖췄다. 연세대도 포스텍엔 없는 인문·사회 분야에 강점을 지닌다. 두 대학이 각자 잘하는 분야에 집중(폐쇄형 혁신)한다고 하자. 사실 양교는 그렇게 해도 별로 아쉬울 게 없는 소위 명문대다.

문제는 각각 폐쇄형 혁신에 성공한다 해도 성과가 제한적이란 점이다. 서로 개방·연결하면 성공확률이 크게 뛴다. 포스텍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서울의 집적된 인프라에서 효과가 극대화되거나, 애플처럼 공학에 인문학·디자인 요소를 결합(이종교배)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개방은 부족 자원의 공유뿐 아니라 중복 자원의 거래·연결비용 최소화를 통한 효율 극대화 측면도 있다. 모든 대학이 똑같이 백화점식 학과를 보유할 필요가 있는가? 대학간 개방·공유·협력이 활성화되면 예컨대 연세대 의학, 포스텍 공학, 고려대 법학 식으로 강점을 특성화할 수 있을 터이다. 비용절감은 덤이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당사자들 못지않게 다른 대학 관계자들도 두 대학이 윈윈(win-win)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봤다. 계획대로 된다면 연세대는 이공계 선도분야를 확보하고 포스텍도 지방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 실제로 연세대는 최근 각종 세계대학평가에서 라이벌 대학들에 다소 밀리는 추세였다. 포스텍 역시 이전에 비해 학생들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양교 총장이 말한 것처럼 “실패하더라도 안 바꾸는 것보다는 낫다. 가만히 있으면 100% 실패할 테니까.”

공유 실험의 성공 여부는 비전보다 ‘디테일’에 달려있다. 블록체인 캠퍼스를 비롯한 여러 시도가 얼마나 일관성 있게 지속가능한지가 관건이다. 당장 두 대학 총장 모두 이미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양교가 내놓은 개방·공유캠퍼스 세부과제는 채 2년이 안 되는 시간에 구현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했다. 파격 시도에 대학가의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팔로우업(후속조치)과 임베디드 거버넌스(배태된 지배구조)라는 지난한 과제가 두 대학에 주어졌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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