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약사회와 산하 시도지부 임원 1000여 명이 지난해 12월 청와대 효자주민센터 앞에서 ‘편의점 판매약 확대’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한경 DB
대한약사회와 산하 시도지부 임원 1000여 명이 지난해 12월 청와대 효자주민센터 앞에서 ‘편의점 판매약 확대’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한경 DB
국내 바이오벤처 쓰리빌리언은 오는 5월 미국에서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서비스를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타액만으로 다운증후군 등 4800여 종의 유전적 희귀질환 발병 위험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서비스 일정도 잡혀 있지 않다. 국내에선 불법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반대로 가정용 유전자검사(DTC)가 기초적인 것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돼 있다. 의사뿐만이 아니다. 약사 간호사 등 의료 분야 전문직의 집단이기주의에 산업 혁신이 발목 잡힌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병원 밖에선 유전자검사 안돼”

미국 중국 등에서는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희귀질환 등의 발병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DTC 서비스가 자유롭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체질량지수, 혈압, 혈당, 탈모 등 12개 항목만 합법이다. 이마저도 2년 전에야 허용됐다. 환자에게 적합한 항암제를 찾는 검사인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유전자 패널 검사도 병원만 할 수 있다. 의료계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의사도 약사도 '그들만의 이익' 추구… '의료 혁신'은 내팽개쳐
이 때문에 쓰리빌리언 같은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의료계는 유전자 검사가 의료기관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뜻을 고수해왔다. 과잉진료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검사 수익과 유전자 정보를 병원이 독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전자 빅데이터를 병원이 독점하는 구조가 되면서 미래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중국에도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DTC로 수집된 유전자 정보는 질병 원인 규명, 신약 개발 등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중국 유전자검사업체인 BGI는 1000만 건의 개인 유전자 정보를 확보해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미국 23앤드미 등도 수백만 건의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다국적 제약사 등과 협력하고 있다.

발목 잡힌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반쪽 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의료계의 반대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금지돼 있는 탓이다. 일본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직접 찾지 않고 스마트폰 등으로 의사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진료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19년째 시범사업만 반복하고 있다. 대형병원이 동네의원의 환자를 뺏어갈 것이라는 이유로 의사협회 등이 반대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의료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와 고령자를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예후를 관리하고 질병의 위험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국내에선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실시간 환자 상태 모니터링 등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의사들의 원격의료 반대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약 판매 반대하는 약사들

약사들도 기득권 지키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 온라인 의약품 판매 등 약사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제도 도입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보건복지부가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한약사회 대표로 참석한 강봉윤 정책위원장이 칼을 꺼내 자해를 시도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미국 일본 등에서는 온라인에 기반한 의약품 판매가 일상이 되고 있다. 미국은 1만 종의 의약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도 지난해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도매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일본도 일반의약품을 온라인에서 살 수 있도록 2013년 허용했다. 이 교수는 “시행해보지도 않고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정작 소비자의 효용은 뒷전에 밀려 있다”고 꼬집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