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18) 명절마다 전 부치는 나를 본 딸의 그림선물
최근 SNS에서 전국 며느리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인기리에 연재됐던 '며느라*'라는 웹툰에서는 제사준비로 바쁜 며느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식구들이 먹고 웃으며 즐기는 가운데 시어머니는 "힘들지? 쉬엄쉬엄해"라고 며느리를 격려하며 전 부칠 재료를 더 가져와 옆에 놓고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여섯살 된 조카는 즐겁게 명절을 보내는 남자들의 모습과 전 부치는 며느리의 모습을 각각 그려 선물로 준다.

익숙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내가 받았던 딸의 그림 선물과 어쩜 그리도 닮아 있던지.

우리나라 평범한 집안의 며느리라면 이같은 상황을 겪는 건 신기할 일도 아니다.

결혼 전 명절은 온가족들과 친지를 만나 맛있는 음식 먹고 즐겁기만 한 연휴였는데... 결혼 후 평생 본적도 없는 남의 편 집안 조상 제삿상 차리느라 허리 펼 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대부분 음식장만은 대부분 시어머니가 담당하시지만 명절마다 전 5종세트 부쳐야하는 건 며느리인 내 몫이다.

전을 부치려고 바닥에 신문지부터 깔고 전용 대형 팬, 밀가루, 달걀, 호박, 기름 등 준비할라치면 아이들은 재밌겠다며 자기들도 하겠다고 달려들지만 결국 밀가루장난만 치고 어지럽히다 싫증내며 가버린다.

홀로 남은 나는 동그랑땡, 호박전, 고추전, 동태전, 연근전 등을 반나절에 걸쳐 부쳐냈다.

커피도 마셔보고 탄산수로 달래보기도 하지만 니글니글한 속은 어쩔 수 없는 법. 기름냄새를 연신 맡다보면 만드느라 힘들기만 하고 정작 상에 오른 전은 쳐다보기도 싫다.

며느리인 내가 '전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 순간에도 전날 저녁 간만의 연휴를 맞아 동창들과 흥겨운 저녁자리를 가졌던 남편은 아직 꿈나라였다.

얼마 후, 딸은 내게 선물이라며 그림을 한장 내밀었다. 제목은 '엄마는 밀가루를 만들고 있어'.

열심히 전을 부치는 엄마를 아주 예쁘게(?)그려서 선물로 줬다...고...고마워.
[못된 엄마 현실 육아] (18) 명절마다 전 부치는 나를 본 딸의 그림선물
[못된 엄마 현실 육아] (18) 명절마다 전 부치는 나를 본 딸의 그림선물
전을 부치는 걸 보고 밀가루를 만들고 있다고 표현한 게 웃겼지만 얼굴에 가루까지 묻히고 비장한 표정의 그림속 내 모습을 보는 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전을 부치는게 짜증나거나 힘들지도 않았고, 자고 있는 남편이 미운 것도 아니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사진 속 '밀가루를 만들어내는 마법사'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자고 일어나보니 전 부치기가 다 끝나있다는 걸 안 남편은 미안한 기색으로 하지만 매우 맛있게 전을 집어 먹었다.

그 다음 명절, 나는 자는 남편을 깨우고 아이들에게도 임무를 배당했다.

각각의 재료를 그들 앞에 준비해주고 '와 맛있겠다. 같이 하자~!' 했더니 모두들 손을 씻고 모였다.

아이들에게도 지금은 밀가루 장난을 하는 시간이 아님을 주지시켰다. 맛있는 동그랑땡을 먹고싶으면 전부치기 또한 같이 해야한다고 얘기했다. 누가 누가 더 예쁜 동그랑땡을 만드나 시합을 벌이자 꽤 빠른 속도로 동그랑땡이 만들어졌다.

미처 몰랐는데 남편도 아이들도 전 부치기에 제법 소질이 있다.
[못된 엄마 현실 육아] (18) 명절마다 전 부치는 나를 본 딸의 그림선물
넷이 손을 모아 전을 부치니 전혀 힘들지도 않고 오히려 동그랑땡이 보기에 귀여울 지경이다.

헐.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그동안 내가 혼자 개고생(?)했던 거였구나.ㅋㅋ

뒤통수에 눈이 없어 보지는 못했지만 아들이라면 끔찍이 위하시는 시어머니가 이 모습을 마냥 흐뭇하게만 보셨는지는 알 수 없다.

남편은 어마어마한 양의 전 재료를 다 부쳐내느라 나름 힘들었던지 그 다음 명절부터는 전 재료 양에 급관심 갖기 시작했다.

"뭐하러 그렇게 많이 해~. 꼬치도 하지말자 우리."

딸들이 커서 살아갈 시대에도 전부치는 명절 일상이 유지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결혼 후 이렇게 살았으면 기대하는 모습으로 지금의 내 모습을 딸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못된 엄마 현실 육아] (18) 명절마다 전 부치는 나를 본 딸의 그림선물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