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고향은 1976년 안동댐 완공으로 수몰된 경북 안동 산골마을 월곡리다. 안동중학교 시절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서울대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서울대사대부고)를 거쳐 196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전자공학과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1966년 전자산업진흥계획에 힘입어 그해 서울대 수석이 입학할 정도로 ‘뜨는’ 학과였다. “공대를 졸업해 공장에서 조용히 일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도 그의 결정에 한몫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공장에 오지 말라’는 선배들의 권유에 다른 길을 모색했다. 친구 소개로 행정대학원 시험을 쳤다가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이 위원장은 12회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하면서 경제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위원장은 강연할 때면 항상 ‘성실함’을 자신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 197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인들로부터 ‘못해도 차관까지는 할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항상 출근했다. 동료보다 5분 일찍 출근하고 5분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10년 하면 조직에서 인정받는다는 게 이 위원장의 지론이다.

이 위원장은 2006년까지 787일 동안 ‘최장수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있었다. 26개월간의 임기를 마친 뒤 한국무역협회장을 거쳐 2009년 STX그룹의 STX에너지 회장으로 영입됐다. 이후 2010년 STX중공업 회장, 2011년 STX건설 회장에 선임돼 STX그룹의 에너지·중공업부문 총괄회장으로 세계 시장 확대의 중책을 맡았다.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허덕인 2013년 9월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LG상사의 제안을 받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이 위원장은 2016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대신해 위원장직에 취임한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위기에 처한 올림픽을 살려냈다. 이 위원장 주도로 2016년에만 26개 테스트 이벤트를 치렀다. 이후 그의 폭넓은 네트워크로 기업들의 올림픽 후원을 이끌어내 수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던 평창동계올림픽을 흑자재정으로 돌려놨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