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원대 기관 수탁 시장을 놓고 은행 간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이 국내외 투자를 위해 은행에 맡기는 수탁자산이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수탁보수가 0.01%에도 못 미칠 정도로 싼 편이지만 수백조원 단위 수탁자산을 확보하면 수수료 수익이 상당해 적극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26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내 11개 은행이 참여하는 기관 수탁시장 규모(수탁액 기준)는 2015년 말 685조원, 2016년 말 736조원에서 작년 말 818조원까지 증가했다. 매년 수탁액의 증가 폭도 커지고 있다. 2016년 51조원 넘게 증가한 데 이어 작년 81조원이 불어났다.

수탁사업은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기관들이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할 자금을 은행들이 보관·관리하는 업무다. 은행은 각종 자금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수탁보수를 챙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각 공제회, 연기금 등 기관 자산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국내외 투자 확대로 자본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수탁수익도 그만큼 늘어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800조 잡아라"… 시중은행, 기관 금고지기 쟁탈전
성장성이 높다 보니 국민연금 등 ‘큰손’ 기관들의 수탁은행으로 선정되기 위한 입찰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전국 영업망을 통해 끌어모으는 신탁자산과 달리 수탁자산은 전산 시스템만 갖추면 본사의 적은 인력으로 수탁자산을 늘려 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탁보수만 보면 1bp(0.01%포인트)에도 못 미친다”며 “다만 기관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일부 자금을 저비용성 예금으로 유치하고, 파생상품 및 외환거래로 부가 수익도 얻을 수 있어 전체 수수료율은 0.01~0.03% 정도”라고 귀띔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작년 말 수탁액 154조원을 확보해 국민은행(149조원)을 처음 제치고 수탁은행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작년 중소기업중앙회와 국민연금 채권 부문, 기획재정부 연기금투자풀 수탁은행으로 선정되면서 2016년 100조원에서 50조원 넘게 급증했다. 우리은행도 작년 국민연금 주식부문과 국토교통부 수탁은행을 맡아 2016년 129조원에서 144조원까지 증가했다.

반면 매년 수탁액 1위였던 국민은행은 2016년 말 167조원에서 지난해 말 149조원으로 줄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차세대 수탁시스템 개발로 작년 수탁액 증가 폭이 두드러졌고, 지난해 베트남에서 국내 업계 최초로 수탁업무를 개시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익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