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알갱이 한 알에 온 우주가 담겨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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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일곱 번째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출간
세상이 모두 연(緣)으로 이어진 불교적 세계관 드러내
세상이 모두 연(緣)으로 이어진 불교적 세계관 드러내
김소월·서정주 등 한국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평가받는 문태준 시인(사진)이 일곱 번째 시집을 냈다. 연분홍색 고운 표지에 파랑 글씨로 정갈하게 적힌 제목은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 표지와 제목부터 보드랍고 잔잔한 시인의 시적 세계가 물씬 풍긴다.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려다보는 시인의 시선을 잘 대변해주는 제목이다. 21일 기자와 만난 문 시인은 “‘사모’라는 단어에는 모심과 섬김의 태도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63편에서는 문 시인의 불교적 세계관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는 “우주 생명의 존재는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귀하다는 생각을 이번 시집에 많이 반영했다”며 “‘모래 알갱이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처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사유를 품고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나는 너의 뒷모습/ 나는 네가 키운 밀 싹/ 너의 바닷가에 핀 해당화(…).’(‘사랑에 관한 어려운 질문’ 중) 같은 표현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모든 생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가 없으면 지탱받지 못합니다. 하나의 존재 안에 다른 존재들이 포함돼 있는 것, 그게 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시집에는 연못, 호수, 밭, 논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가 다수 수록돼 있다. 이 때문에 문 시인의 시는 ‘자연 서정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쇠락의 세계를 보여주려 하다 보니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안온한 자연을 배경으로 했다기보다 나와 모든 사람이 함께 살림을 꾸리고 살아가는 시공간으로서의 자연을 시적 배경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여리고 섬세한 그의 시집에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나 비관이 두드러지는 시 몇 편이 돌출돼 있다.
‘나를 꺼내줘 단호한 틀과 상자로부터 (…) 신분증과 옷으로부터// 흐르는 물 속에 암자의 풍경 소리 속에 밤의 달무리 속에 (…) 당신의 감탄사 속에 넣어줘.’(‘매일의 독백’ 중)
문 시인은 “도시에서 생활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무자비함, 단호함, 각진 생각들이 우리의 최종 지향점은 아니다”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심성은 흐르는 물, 가랑비, 실바람과 같은 유연함과 어떤 여지가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으며 문단의 중견 시인으로 자리를 굳히긴 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는 “늘 시를 생각하며 살려고 한다”고 답했다. “외투의 한쪽 주머니는 시의 향기가 풍기는 ‘시 주머니’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문 시인은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22년째 일하고 있다. 시 쓰는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스님들과 법문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오히려 시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내 시 세계에 스님의 말이 유입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아주 짧은 시행으로 이뤄져 있는 시들을 모아 출간할 계획이다. “시라는 장르에서 너무 장황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건 다소 소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사하는 언어를 줄이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 독자들이 들어와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를 써보려 합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려다보는 시인의 시선을 잘 대변해주는 제목이다. 21일 기자와 만난 문 시인은 “‘사모’라는 단어에는 모심과 섬김의 태도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63편에서는 문 시인의 불교적 세계관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는 “우주 생명의 존재는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귀하다는 생각을 이번 시집에 많이 반영했다”며 “‘모래 알갱이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처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사유를 품고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나는 너의 뒷모습/ 나는 네가 키운 밀 싹/ 너의 바닷가에 핀 해당화(…).’(‘사랑에 관한 어려운 질문’ 중) 같은 표현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모든 생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가 없으면 지탱받지 못합니다. 하나의 존재 안에 다른 존재들이 포함돼 있는 것, 그게 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시집에는 연못, 호수, 밭, 논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가 다수 수록돼 있다. 이 때문에 문 시인의 시는 ‘자연 서정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쇠락의 세계를 보여주려 하다 보니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안온한 자연을 배경으로 했다기보다 나와 모든 사람이 함께 살림을 꾸리고 살아가는 시공간으로서의 자연을 시적 배경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여리고 섬세한 그의 시집에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나 비관이 두드러지는 시 몇 편이 돌출돼 있다.
‘나를 꺼내줘 단호한 틀과 상자로부터 (…) 신분증과 옷으로부터// 흐르는 물 속에 암자의 풍경 소리 속에 밤의 달무리 속에 (…) 당신의 감탄사 속에 넣어줘.’(‘매일의 독백’ 중)
문 시인은 “도시에서 생활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무자비함, 단호함, 각진 생각들이 우리의 최종 지향점은 아니다”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심성은 흐르는 물, 가랑비, 실바람과 같은 유연함과 어떤 여지가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으며 문단의 중견 시인으로 자리를 굳히긴 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는 “늘 시를 생각하며 살려고 한다”고 답했다. “외투의 한쪽 주머니는 시의 향기가 풍기는 ‘시 주머니’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문 시인은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22년째 일하고 있다. 시 쓰는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스님들과 법문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오히려 시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내 시 세계에 스님의 말이 유입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아주 짧은 시행으로 이뤄져 있는 시들을 모아 출간할 계획이다. “시라는 장르에서 너무 장황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건 다소 소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사하는 언어를 줄이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 독자들이 들어와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를 써보려 합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