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개 이상의 당적(복수 당적)을 가질 경우 퇴직된다.’(공직선거법 192조 4항)

1994년 제정된 이 법은 23년간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는 ‘룰’이었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당적 변경을 금지한 법으로, 일명 ‘철새방지법’으로 불린다. 정가에서는 이 법에 따라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통합반대파 의원들이 탈당해 만든 ‘민주평화당’으로의 합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법을 개정하거나 출당 조치 등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인 박주현 이상돈 장정숙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자진 탈당해 민평당에 갈 경우 즉시 당적을 잃는다.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민평당에 갈 수 있는 방법은 ‘강제 출당조치’뿐이다.

이 때문에 세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에게 “나를 출당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안 대표는 “정치적 소신이 다르면 탈당하라”고 말해 ‘이탈’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총선 때 정당 득표에 따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니 자의적으로 당적을 옮길 거면 의원직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세 의원의 이적을 용인할 경우 민평당이 교섭단체 기준의석인 20석에 육박할 수 있어 견제 차원에서라도 이탈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의석 수가 곧 정당 국고보조금과 인력지원 등에 연동되는 현실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소속 정당에서 마음이 떠난 의원은 쟁점법안 표결 시 도움이 안 되지만 적어도 상대 정당에 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민평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껏 소속 정당을 바꿀 수 있는 지역구 의원과 비교해 평등 원칙에 위배되고, 의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이 법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안 대표가 정치적 소신이 다른 사람을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합의이혼’에 ‘도장(출당 조치)’을 찍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김광수 민평당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들의 정치적 소신을 꺾는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달 26일 선거법 개정안을 냈다. 소속 정당이 다른 정당과 합당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합당된 정당의 당적을 이탈하더라도 의원직을 잃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