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멋대로 증액' 위한 예산법률주의 안돼
현행 대통령 중심의 권력구조를 분산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 논의되는 가운데 여당은 ‘예산법률주의’ 도입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즉 헌법 59조의 조세법률주의에서 더 나아가 지출예산도 국회에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든 예산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회가 예산결정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권력구조를 분산하는 의미가 있다.

2018년도 정부 예산은 작년보다 7.1% 늘어난 429조원이다. 복지 부문의 예산 증가율이 12.5%로 가장 높다. 올해 성장률은 높아야 3% 초반 수준일 텐데 예산 증가율은 이를 두 배나 웃돈다. 앞으로 복지 부문 예산은 더 급속히 늘어나고 예산 증가율이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의 대선공약 이행 의지가 워낙 강해 직접적 공약비용 외에 ‘최저임금 인상’ 등에서 보듯이 공약 이행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 부채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 어떤 형태로든 정부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지출을 국회가 더 면밀히 검토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예산법률주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회가 정부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을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예산 증액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여당은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하면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도록 한 헌법 57조 조항을 삭제한다는 방침이다. 즉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현행과 같이 수용하되 자신들의 예산도 포함시킴으로써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하자는 것이 여당 개헌위원회의 예산법률주의인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온 국회의원의 지역 이기주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사실 국회의원이 지역 민원을 해결하는 지방의원이 아닌지 의심 가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의 공약에는 지역 공약만 있고 거시적 국가 공약이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 문제만 나오면 유권자 눈치 보기 바쁘다. 예산철만 되면 쪽지예산에 문자예산까지 폭발하는 게 현실이다. 증액이 가능한 예산법률주의는 세금을 잿밥으로 아는 국회의원들 탓에 재정을 안정시켜야 하는 국회의 기능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예산 심의에서 지역 이기적 지출 확대의 장애가 제거돼 ‘패키지 딜’이 성행할 것이다. 서로 원하는 선심성 지역예산을 끼워넣어 예산을 통과시킬 것이란 얘기다. 결과적으로 국가적 예산은 소외되거나 축소되고 정치적 입김이 센 의원의 특정 지역에만 예산이 편중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민에게는 국회의원들이 여야로 나뉘어 싸우면서 국정을 논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서로 잘 알고 배려도 해주는 타협과 공존의 친구 간이다.

예산을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 정부의 포퓰리즘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의 하나다. 선진국도 거의 다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제도가 그렇듯이 겉으로는 잘 포장돼 있지만 독소 조항이 끼어드는 경우가 있다. 합리적인 현행 헌법의 조항까지 삭제해 가면서 자신들의 지역 이기심을 채우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혈세를 더 낭비하게 하고 재정을 더 불안하게 하는 개악(改惡)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당 개헌위원회는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국가예산을 편성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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