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에 입체주의 알린 프랑스 화상
“나는 피카소가 작업실로 쓰던 그 방에 들어가게 됐어요. 라비냥가(예술가들이 모이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한 거리)의 화실처럼 비참하고도 가난한 광경은 없을 겁니다.”

입체파 그림을 주로 거래한 프랑스의 화상(畵商) 다니엘-앙리 칸바일러(1884~1979)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화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낀 점이다. 당시 피카소는 무명 작가였고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 더러운 방에서 칸바일러는 입체주의의 시초가 된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처음 본다. 이 작품에 매료된 칸바일러는 입체주의에 빠져들어 이 사조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초라한 방에 걸려 있던 이 그림은 칸바일러의 노력으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현재 세계적 명성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하이라이트 소장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칸바일러가 예술평론가이자 라디오뉴스 기자였던 프랑시스 크레미유(1920~2004)와 1960년 한 달간 프랑스 국영 라디오방송에서 대담한 내용을 엮은 《나의 화랑, 나의 화가들》이 국내에서 번역·출간됐다. 칸바일러는 대담에서 화상이 된 계기, 입체주의의 미술사적 의의 등 다양한 내용을 조리 있게 풀어나간다. 그는 당대 화가들과 개인적 친분도 깊었다. 이들과 친구로 지내며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피카소가 유명해진 뒤 그의 작품 위작이 많이 만들어지자 칸바일러는 위작 제작자를 고소하라고 피카소에게 권했다. 그러자 피카소는 “그들 중 일부는 내 친구일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윤은오 옮김, 율, 338쪽, 1만60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