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건설현장에서 공기에 쫓기는 이유는 가장 먼저 예정공기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전시 행정에 집착해 철도나 도로의 개통일자를 앞당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설계도서가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착공하기도 한다. 터널 공사에서 TBM(tunnel boring machine)의 24시간 가동을 전제로 예정공기를 산정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다른 산업에서는 주 5일 40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있으나, 건설현장에서는 아직 요원하다. 그런데 휴일에는 레미콘 등 건설자재를 공급받기 어렵다. 건설기계 운영자나 건설근로자 측에서 집단적으로 휴일·야간작업을 거부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공발주기관에서는 주 5일 및 1일 8시간 작업을 반영해 발주공사 종별로 표준공기산정식을 제정·보급해야 한다.
민간 건축공사도 마찬가지다.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로 예정공기가 지나치게 짧아지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국토교통부에서 민간공사용 표준공기산정식도 제정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 또, 예정공기 산정 시에는 혹한기(酷寒期)나 혹서기(酷暑期), 우기(雨期), 그리고 미세먼지 우려 시 작업 중단 등을 충실히 반영하고, 혹한기이거나 폭설이 내린 경우 공사 중지가 가능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시공 과정에서 공기에 쫓기는 또 다른 원인은 공기 연장 사유가 불과 몇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령을 보면, 지체상금이 배제되는 사유를 불가항력이나 설계변경 또는 발주기관의 책임으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시공이 중단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혐오시설 등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집단민원 또는 기계·장비나 근로자 파업은 시공사에 귀책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현장부지에 매립돼 있던 불법 폐기물의 처리도 시공사에 책임을 부여해서는 곤란하다.
최근에는 공공공사에서 120여 품목의 자재·설비를 발주자가 직접 구매하도록 강제하면서, 자재·설비의 공급 지연에 따른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또, 전기공사 등 일부 부문의 분리발주도 공사를 지연시키고, 지연에 대한 책임을 불확실하게 하는 요소다. 이를 개선하려면 원도급자의 현장 지휘력을 강화하고, 일괄책임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건설현장의 사망만인율이 선진국의 3배 이상이다. 최근 정부는 2022년까지 중대 재해를 현재보다 5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달성하려면 공기 단축이나 공사비 절감을 우선시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안전우선(safety-first)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요구된다. 그런 측면에서 적정한 공사기간 부여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