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형 반도체가 적용된 가상화폐 채굴기
주문형 반도체가 적용된 가상화폐 채굴기
세계 최대 전자업체인 삼성전자의 실적에는 관련 업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슈가 반영된다. 31일 실적발표회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부가 가상화폐 열풍을 반기고 삼성디스플레이는 경쟁자인 애플의 실적 부진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상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는 “가상화폐 채굴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지난해 관련 반도체 주문이 크게 늘어났다”며 “이 같은 신규 고객 증가로 파운드리사업부의 올해 매출 규모가 세계 4위에서 2위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채굴업자들은 특히 14나노미터(㎚·1㎚=10억 분의 1m)와 10㎚ 등 최신 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제작을 의뢰하고 있다.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채굴 효율이 높아지고 소비 전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아직 상용화하지 않은 8㎚ 공정을 통한 가상화폐 채굴용 반도체 의뢰도 들어오고 있다. 이 상무는 “삼성전자가 제작한 가상화폐 채굴용 반도체가 전력과 성능에서 높은 우위를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가상화폐 열풍에 웃는 파운드리 사업부
이는 가상화폐 채굴이 반도체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지난 25일 SK하이닉스의 실적발표회 내용과 대비된다. 가상화폐 채굴에서 주문형 반도체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급속히 대체한 데 따른 결과다. D램 등을 사용하는 GPU가 퇴출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사업비중이 큰 SK하이닉스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파운드리를 육성하는 삼성전자에는 중요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올 들어 판매 중단설까지 나오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Ⅹ(텐)에 대한 관심도 두드러졌다. 아이폰Ⅹ에 들어가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 공급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아이폰Ⅹ의 올 1분기 세계 판매량을 4000만 대로 예상한 애플은 최근 2000만 대로 전망을 낮췄다. 그만큼 애플에 납품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매출 및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등을 중심으로 거래처를 다변화해 위기를 돌파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를 확보하는 반사이익을 누릴 전망이다. 2016년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 직접 한국까지 찾아와 공급을 요구하는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OLED에 목말라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