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노사합의로 수당을 폐지한 경우에도 근로계약서상의 수당지급 조항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 절반 이상 동의를 얻어 회사의 취업규칙을 개정하더라도 기존 개별 근로계약보다 불리한 조건을 강요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적용돼야 한다는 ‘유리성 원칙’의 재확인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건’ 우선 적용”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해양구조물 조립업체 G사가 직원 정모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의 상고심에서 정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G사는 2016년 4월 자금 상황이 나빠지자 노사협의회를 통해 소속 근로자 206명 중 144명(69.9%)에게서 ‘기본급 외의 모든 약정수당을 폐지한다’는 내용의 자구계획안에 동의를 받았다. 그러자 동의서를 내지 않은 정씨는 기존에 약속된 수당을 달라며 고용노동청에 신고했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은 근로계약과의 관계에서 최저 기준을 설정하는 효력을 가지는 데 그친다”며 “취업규칙의 내용보다 근로계약의 조건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당연히 근로계약이 취업규칙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한 1·2심의 결정이 옳다고 봤다. 취업규칙의 변경이 적법했지만, 그렇더라도 비동의자에게까지 효력이 미쳐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이동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사법연수원 37기)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적용돼야 한다는 ‘유리성의 원칙’이 재확인된 판결”이라고 말했다.

◆‘획일적 적용은 구조조정 무력화’ 지적

이번 판결이 노동시장의 빠른 변화와 노동계층의 다양한 분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긴박한 회사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틀’ 안에서 내린 판결”이라는 우려다.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을 통한 획일적인 근로조건 강제를 벗어나, 근로자 개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보장되도록 노동관계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근로자들도 회사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했을 것”이라며 “근로자 다수의 동의를 얻어 변경한 취업규칙인데도 근로계약 내용보다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했다. 김 본부장은 “노동 관련 법제를 다양한 근로제공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규율이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종별, 사업장별 특성이 반영되고 개별 근로자의 다양한 선택을 허용하는 근로계약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G사 대표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재판에도 넘겨졌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취업규칙을 적법하게 변경했기 때문에 정씨에게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엽/신연수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