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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 칼럼] 지게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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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 칼럼] 지게부대원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강원도 평강지구. 치열한 공방 중에 포탄이 바닥났다. 20㎞ 떨어진 본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세가 험해서 탄약이 도착하려면 다섯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자칫하면 부대가 전멸할 수 있는 위기였다.

    이 소식을 들은 민간인 400여 명이 20~30㎏씩 탄약을 짊어지고 달려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 덕분에 적의 공격을 막고 역습으로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이들은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노무자였다. 군복을 받지 못해 무명옷 차림으로 전투지역에 군수품을 져 날랐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인 한반도에서 이들의 역할은 컸다. 장비가 부족하고 도로 사정이 나빠 지게로 보급품을 옮겨야 했기에 이들은 ‘지게부대원’으로 불렸다. 정식 명칭은 ‘한국노무단(KSC: Korea Service Corps)’이지만, 미군은 지게 모양이 알파벳 A자를 닮았다며 ‘A 프레임 부대(A Frame Army)’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45㎏ 정도의 짐을 지고 하루 평균 16㎞를 걸었다. 산에 오를 때는 보급품, 내려올 때는 부상병을 실어 날랐다. 밤새도록 탄약을 나르느라 이동 중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졸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기도 했다.

    부산항으로 들어오던 하루 1만t의 전쟁물자를 옮기는 것도 이들 몫이었다.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총탄을 뚫고 식량과 탄약을 나르는 지게부대를 보고 유엔군은 “생명줄”이라며 고마워했다.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작은 체구지만 무거운 보급품을 지고 험지를 오가며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했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최소 10만 명의 미군을 더 파병해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선 지휘관들도 “전투의 절반은 이들이 해냈다”며 극찬했다. 워싱턴DC의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지게부대원들이 탄약을 운반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의 공이 얼마나 컸는지 기억하자는 미군 측의 배려로 특별히 새긴 장면이다.

    이들이 임무를 마치고 귀향할 때 받은 것은 ‘징용 해지 통지서’와 종군기장, 기차표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만 전사자 2064명, 실종자 2448명에 이른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희생자까지 합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다행히 이들의 유해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에 이어 어제 전사한 ‘지게부대원’을 사망유공자로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숨은 영웅’들이 많다. 증거 자료가 부족한 데다 참전을 증명해 줄 ‘인우(隣友)보증인’마저 고령화와 사망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들의 희생 위에 번영을 일군 대한민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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