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대혼란… 다시 짚어본 5가지 궁금증
(1) 규제 해야하나
"21세기 '적기조례'될 수도" vs "기술에 비해 시장 너무 과열"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규제 일변도로 대응하자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과 국세청이 가상화폐거래소 조사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지안까지 거론했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고강도 규제 정책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유망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상화폐 대혼란… 다시 짚어본 5가지 궁금증
가상화폐 대혼란… 다시 짚어본 5가지 궁금증
인호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장)는 “가상화폐 시장이 나무라면 블록체인 기술은 이를 뒷받침하는 뿌리와 같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한국이 자칫 금융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우선 일반인에게 공개된 ‘퍼블릭 블록체인’과 기업 등 정해진 참여자들이 구성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게 인 교수의 설명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사내 인트라넷에 비유할 수 있다. 거래 내역을 ‘분산 원장’에 기록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지만 허용된 참여자만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 유지 부담에 대한 보상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는다.

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반 인터넷망에 비유할 수 있다. 다만 ‘분산 원장’을 기록하는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연산능력은 모든 참여자가 개인 간(P2P) 방식으로 분담하는 게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이다. 이에 대해 보상이 없으면 아무도 연산능력을 공유하지 않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스템 운영 기여에 대한 보상이자 증명으로 가상화폐가 지급된다. 따라서 퍼블릭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게 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혁신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아니라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일어날 것”이라며 “정부에서 가상화폐를 규제하면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마차 업자들이 자동차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차량 속도를 제한한 ‘적기조례’ 탓에 자동차산업이 위축된 영국처럼 한국도 금융업계 후진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가상화폐를 양성화한 스위스 사례를 들었다. 인 교수는 “스위스는 애초부터 가상화폐 시장을 양성화하고 가상화폐공개(ICO)를 장려해 관련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였다”며 “이와 달리 한국은 ICO를 금지하면서 인재와 자본을 유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환 차의과학대학 경영대학원 부원장도 “블록체인이 자동차라면 가상화폐는 엔진과 같다”며 “가상화폐 규제는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킨다면서 엔진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가상화폐 시장 과열은 조심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블록체인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는 “블록체인을 회사에서 오래 연구하고 준비한 사람일수록 아직 산업에서의 적용은 터무니없이 이르다는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표 대표는 “기술과 산업에 대한 헛된 기대는 금물”이라며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을 업무에 활용하는 시기는 8~9년 뒤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오래 지적된 문제에도 답을 못 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유망한 기술이긴 하지만 어떻게 발달해나가고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2) 거래소 폐쇄되면시장 대혼란…가상화폐 해외로 보낸 뒤 환전 가능
해외 송금 어려울땐 '하드월렛'에 저장할 수도


가상화폐거래소가 폐쇄되면 대규모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화폐 국내 가격이 급락할 수 있어서다. 거래가 힘들어진 만큼 가상화폐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대혼란… 다시 짚어본 5가지 궁금증
하지만 가상화폐 세계 가격은 소폭 하락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비트코인 거래량이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세계 가격이 폭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거래자가 거래소가 패쇄된 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두 가지다.

가상화폐 거래자들은 법무부의 거래소 폐쇄 발언이 나오자 입금한 현금과 코인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가상화폐의 특징 때문에 거래소 폐쇄 목적인 가격 안정도 담보할 수 없다.

국내 거래소가 폐쇄되면 거래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국내 거래소에 있는 가상화폐를 해외 거래소로 송금한 뒤 환전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이 작년 9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의 출금 중단 등 강도 높은 규제정책을 내놓자 중국 거래소에선 2만여 개의 비트코인이 해외 거래소로 전송됐다.

가상화폐 거래자들은 거래소가 폐쇄될 경우에 대비해 벌써부터 해외 거래소로 향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는 가상화폐 해외 송금을 위한 안내글이 10여 건씩 올라오고 있다. 거래자들은 홍콩 거래소인 바이낸스로 보유 코인을 옮기는 방법을 가장 많이 추천하고 있다. 가입 절차가 한국어로 안내돼 있고 코인 송금도 빠르면 10분 이내에 처리돼 간단해서다. 다만 바이낸스에서 달러화 환전을 할 방법은 아직 없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홍콩이나 일본 등에 가상화폐를 보낸 뒤 환전해 현금화하는 방식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세계 각국의 외국환 거래법 때문에 현지에서 국내로 자금을 들여오는 데는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송금이 어려울 경우 하드월렛(가상화폐를 담을 수 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에 가상화폐를 저장하는 방법도 있다.

(3) 어떤 게 살아남을까
전 세계 가상화폐 2000여종…중앙銀·기업 뛰어들면 시장 재편


세계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종류는 2000여 종으로 추정된다.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하면 누구나 가상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긴 불가능하다.

가상화폐 대혼란… 다시 짚어본 5가지 궁금증
나카모토 사토시가 2008년 비트코인에 관한 논문을 통해 블록체인의 개념을 정립한 뒤 지난 10년간 가상화폐는 진화를 거듭했다. 1세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블록에는 거래 내역과 잔액만 저장된다. 한 블록의 크기는 1MB로 제한돼 있고, 10분에 한 번씩 블록을 체인으로 묶어 저장한다. 블록을 생성하는 데 에너지 소모량이 많고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한 것이 2014년 등장한 2세대 가상화폐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거래 내역 외에도 계약서 등 다양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한 블록의 크기는 무제한이고, 10초에 한 번씩 저장한다. 비트코인과 다른 인증방식을 적용해 속도도 높였다. 작년 가상화폐 열풍을 이끈 것은 비트코인이지만 가격 상승률을 따져보면 이더리움(9000%)이 비트코인(1700%)보다 크게 높았던 이유다.

최근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에 오른 리플은 활용도가 높아 부각되고 있다. 리플은 간편송금을 목적으로 탄생한 가상화폐다. 리플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리플넷’ 안에서 일종의 송금 수수료 개념으로 쓰인다. 1회 송금당 걸리는 시간이 3~4초로 비트코인(7초)보다 빠르다.

업계에선 중앙은행이나 기존 기업들이 가상화폐를 내놓으며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장용량, 속도, 에너지 소모량 등에서 월등한 새로운 가상화폐가 등장하면 언제든지 기존 강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 가상화폐 기술에 지급 보증이 결합하면 가상화폐가 투기 수단에서 화폐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필름업체 코닥은 지난 9일 블록체인 플랫폼 ‘코닥원’을 통해 가상화폐 ‘코닥코인’을 발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메신저 텔레그램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텔레그램오픈네트워크(TON) 개발과 가상화폐 발행을 검토 중이다. 세계 최대 메신저 페이스북도 가상화폐 활용을 시사했다. 두 메신저 업체 모두 모바일 메신저 기반의 가상화폐 송금과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폐쇄적인 블록체인망을 활용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디지털화폐의 가치는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가상화폐들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e-크로네’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덴마크중앙은행 역시 ‘DNB코인’이라는 내부 전용 디지털화폐를 선보였다.

(4) 가상화폐는 돈인가
발행·보증기관 없는 디지털화폐


가상화폐 거래 열기가 뜨겁지만 정작 가상화폐의 실체도 모른 채 거래에 뛰어드는 사람이 태반이다. 가상화폐는 지폐, 동전 등 실물 없이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화폐를 말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은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 공간에서 거래된다는 의미에서 암호화폐로도 불린다.

2009년 비트코인 개발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무려 1000여 개에 이르는 가상화폐가 개발됐다. 처음 가상화폐를 고안한 사람에 의해 규칙이 생겨나고 가치가 매겨지면서 교환 가능한 가치가 형성될 때 시장에서 현금으로 유통된다. 분산형 네트워크 방식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해커가 가상화폐 자체를 해킹하기 어렵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생성되기 때문에 발행기관이 없고, 가치를 보증해주는 주체도 없다. 기존 화폐처럼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 아래 거래내역 등이 관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화폐 발행에 따른 생산 비용이 들지 않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에 저장되기 때문에 보관비용도 없다.

다수 경제학자는 가상화폐는 진정한 화폐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투자자산 내지 투기자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가치를 저장하는 제한적인 기능 말고 화폐의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현금을 당장 대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언제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현금과 달리 비트코인 등은 일부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채굴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자체적인 내재가치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5) 각국 어떻게 접근하나
美·日, 가상화폐 제도권 편입 노력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미국은 가상화폐의 자산적 성격을 인정해 세금을 부과하고 선물거래를 허용하는 등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은 2013년 가상화폐 규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듬해 연방국세청(IRS)은 가상화폐를 법적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인정했다. 가상화폐의 채굴, 거래, 판매 등으로 수익을 얻을 경우 소득세 과세 대상에 포함했다.

또 지난해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가상화폐 취급업자의 토큰(디지털 증권) 공모 발행을 증권법상 증권 발행으로 보고 증권법 규제를 적용했다. 같은 해 12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일본은 가상화폐 제도화와 상용화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4월 금융청은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결제수단으로서 가상화폐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거래소의 등록제도 도입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금융상은 12일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관련해) 무엇이든지 규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중국은 가상화폐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가상화폐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가상화폐공개(ICO)를 불법으로 규정한 데 이어 관련 계좌 개설을 금지하고 모든 가상화폐거래소를 폐쇄했다.

유하늘/김순신/안상미/베이징=강동균 특파원/도쿄=김동욱 특파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