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0시께 경부고속도로 서울구간 양재나들목(IC) 부근. 출근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서울로 향하는 차량들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양재IC~한남IC 6.4㎞ 구간은 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도로다. 서울을 들고나는 차량이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40여 년간 100배 이상 늘면서 이 구간은 시간대와 상관없이 정체가 빚어지는 곳이다.

서울 서초구는 이른바 ‘경부고속도로 동맥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추진 중이다. 한남IC부터 양재IC까지 구간 지상도로를 없애는 대신 땅속에 급행·완행 터널을 뚫어 교통 흐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초구가 30년 만에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988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남구에서 분구한 서초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도시계획이 바뀐 적이 없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외에 4차 산업혁명 전초기지로 주목받는 ‘양재 R&CD 특구’ 지정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또 단절됐던 서초의 동서를 연결하는 ‘서리풀터널’ 착공, 마지막 판자촌 성뒤마을 개발, 65건의 재건축 계획 등은 향후 10년 ‘서울 서초구’를 ‘대한민국 서초특별시’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화 상태 경부고속도로 땅속으로

서초구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도로 수명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개통됐다. 48년 전 개통 당시에 비해 교통량은 100배 이상 늘어 교통 정체가 일상화됐고 매연, 소음, 흉물스러운 방음벽 등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서초구의 경부고속도로 프로젝트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정 회장은 1992년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2층 복층화’를 제시했다.

서초구는 정 회장의 제안을 뒤집어 생각했다. 2층짜리 도로를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넣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통 체증, 소음, 분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도로 양쪽으로 단절됐던 문제도 실마리를 찾게 된다. 도로가 사라진 지상에는 서울 여의도공원의 2.5배 크기, 축구장 약 84개 크기(약 60만㎡)의 넓은 공간이 생기는데 이곳엔 녹지공원과 문화관광 복합지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지하도로는 강북으로 바로 빠지는 급행터널과 강남권을 오가는 완행터널로 분리될 것”이라며 “지상 복합시설 등이 들어서면 생산유발효과 4조955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1조8917억원에 3만5000개가 넘는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초구는 올해 경부고속도로 시민위원회를 꾸리고 서울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문가들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관련, 도로 위 부지 개발을 민간에 맡기고 삼성타운 옆 롯데칠성 부지와 코오롱 부지 개발을 연계하면 비용 마련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기업에서 공공기여를 받고 부지를 상업지역으로 용도 상향해주는 방안이다. ‘칼자루’를 쥔 서울시와의 협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조 구청장은 “지난해 정국 혼란으로 본격적인 협의는 못했지만 현 정부 임기 내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37년 숙원’ 서리풀터널 내년 초 개통

장기 과제인 경부고속도로 프로젝트 외에 당장 변화가 예정된 사업도 많다. 우선 지난 37년간 숙원 사업으로 남았던 정보사 부지 관통 터널(서리풀터널)이 내년 1월 개통된다. 이 터널이 뚫리면 내방역에서 서초역까지 자동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다. 현재 30분 거리가 절반으로 주는 셈이다.

대표적 ‘부자 동네’인 서초구에도 판자촌이 있다. 방배동 565의 2 일대 성뒤마을이다. 1960~1970년대 판잣집과 석재상, 고물상 등 무허가 건축물 179개 동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서초구는 이곳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해 2015년 서울시에서 공영개발 결정을 얻어냈다. 2022년이면 판자촌 성뒤마을 자리에 1200여 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성뒤마을 옆 불법 가건물이 많은 국회단지(방배동 511 일대)도 이르면 3년 뒤 전원주택 마을로 바뀐다.

양재지역에는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가 들어선다. 서초구는 양재2동 369만㎡를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양재 R&CD 특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재 지역은 삼성, LG전자, KT 등 대기업과 300여 개 중소기업 연구개발 시설이 모인 곳이다. 지난달에는 인공지능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입주한 양재 R&CD 혁신허브가 문을 열었다.

박상용/백승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