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채무시계(debt clock)’가 20여 년 만에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년 증가하던 독일의 정부 채무가 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채무시계에 표시되는 정부 채무가 올 들어 초당 78유로(9만9806원)씩 감소하는 것으로 표시되기 시작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1일을 기점으로 독일 연방정부의 올해 예산안에 담긴 내용을 반영한 결과다.

독일의 채무시계는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베를린에 있는 납세자연맹 본사에 1995년 설치됐다. 이후 20여 년간 독일 정부 채무는 줄곧 증가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초당 4400유로씩 늘기도 했다. 독일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정부 채무는 1995년 1만2830유로에서 현재 2만3827유로로 불어났다.

독일의 정부 채무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국내 경기가 강한 회복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독일 정부가 2014년부터 매년 균형예산을 편성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라고 FT는 분석했다.

이 덕분에 독일 정부는 향후 4년간 300억유로(약 38조4000억원)의 재정 흑자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독일 정치권에선 재정 흑자로 발생할 여유 자금을 어디에 쓸지를 놓고 벌써부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복지 지출을 늘리자는 의견과 세금을 감면해 주자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라이너 홀츠나겔 독일 납세자연맹 대표는 그러나 “독일은 아직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규정한 기준(공공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을 수 없다고 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독일의 GDP 대비 국가 채무는 72%가량이다. 유럽연합(EU)의 채무시계는 초당 1만유로씩 늘고 있고, 미국의 채무시계는 초당 2만달러씩 증가하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