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통해 선발된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통해 선발된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이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열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의 남자그룹상이 워너원에 돌아갔다. 이번달 서울에서 네 번, 부산에서 두 번 여는 팬미팅은 모든 회차가 전석 매진됐다. 아이돌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난 8월 한 시사주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워너원 신드롬’을 만든 건 CJ E&M의 케이블채널 Mnet이 4~6월 방영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시즌 2)’. 이 프로그램은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는 구호 아래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 자리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팬 투표의 파워가 국내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다. 음악 전문가나 방송사 관계자가 아닌 대중이 아이돌 멤버 선발이나 가수의 순위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팬심(팬의 마음)’은 결국 음원 등 콘텐츠 시장의 구매력으로 표출된다. CJ E&M 음악부문은 워너원 흥행 돌풍 등에 힘입어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79% 늘어난 68억원을 기록했다.

팬 투표 열기는 이후 방송가 음악 예능에서 이어지고 있다. KBS는 지난 10월 “당신이 직접 만드는 최고의 조합, ‘더 유닛’의 탄생에 동참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예능 ‘더 유닛’을 시작했다. 과거 데뷔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가수 가운데 시청자 투표로 남성과 여성 각 9명을 선발해 두 개의 유닛 그룹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JTBC가 같은 달 시작한 예능 ‘믹스나인’도 시청자 투표를 연습생의 순위 결정에 반영한다.

주요 음악 시상식도 팬 투표를 집계해 반영한다. MAMA나 소리바다 뮤직 어워즈 등은 음원 판매 점수, 전문가 심사 등과 별도로 온라인 투표를 20~30% 반영한다. 투표 일정이 공개되면 가수들의 팬카페와 커뮤니티 게시판은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로 달궈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음악 프로그램은 대중이 심사위원에게 결정을 맡기는 ‘간접선거’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직접선거’ 양상을 띤다”며 “일반인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방송 채널도 소수의 지상파 방송에서 1인 매체까지 확장되는 대중화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고 풀이했다.

팬심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좋아하는 가수가 상을 받도록 아이디를 무한정 생성해 투표하거나 ‘대포폰’을 동원하는 등 팬들의 부정투표가 대표적이다. MAMA는 11월 “의도적으로 투표 수를 늘리는 부정투표를 발견했다”며 ‘부정투표 제거를 위한 서비스 점검’을 했다. 지난 1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투표와 심사에 공정하지 못한 MAMA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고 팬들의 접속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있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