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국공립대 우선 정책을 현실화하고 있다. 1조5000억원 규모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 사립대에 편중(약 70%)된 것을 바로잡아 장기적으론 5 대 5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대신, 사립대엔 ‘통’으로 지원금을 줄 테니 학교 발전에 맞게 알아서 쓰도록 ‘당근’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입전형료 인하, 입학금 폐지에 이어 대학 재정지원 사업마저 몫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자 사학(私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곳간 비어가는 사립대 "자율 앞세운 옥죄기" 불만
◆대학 재정지원 틀 바꾸는 교육부

30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계획·대학 재정사업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원 감축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선 A등급을 받은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전체의 84%)는 규모는 달라도 모두 정원을 줄여야 했지만 2019년부턴 ‘기본역량’을 인정받은 상위 60% 대학에 정원 감축 의무를 면제해줌으로써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재정지원 방식도 정부 주도 프로젝트형에서 대학 자율의 ‘통예산’으로 바뀐다. ‘기본역량’ 통과 대학은 ‘일반재정’이라는 이름의 지원금을 받는 식이다. 대학 중·장기 발전 방향에 합당한 지출이라면 용처를 묻지 않겠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산출 지표는 내년 상반기까지 대학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들, “병주고 약주나…”

표면적으론 자율을 강조한 모양새지만 대학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서울 주요대의 한 총장은 “대학들이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방안은 빠진 채 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눠줄 것인지만 정책에 담은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입전형료의 용처가 분명치 않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대학이 두 자릿수 인하를 하도록 강제하고, 지난 28일엔 사립대 입학금 폐지를 일방 발표한 직후여서 더욱 입맛이 개운치 않다는 게 대학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대학이 정부 돈줄에 더 목맬 수밖에 없는 수렁에 빠져버렸다는 한탄이기도 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4년만 해도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 수혜 비중이 5 대 5 수준이었으나 작년엔 사립대가 70%를 가져갔다”며 “국립대의 공적 역할 수행에 제약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국공립대 기 살리기’ 기조에 사립대들은 불만이 역력하다. 한정된 자원을 국공립대에 몰아주면 사립대는 뒷전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전체 4년제 대학 가운데 사립대 비중이 70~80%임을 감안하면 재정지원사업을 국공립대와 5 대 5 수준으로 나누는 것은 “균형을 가장한 역차별”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대학들과 뭐로 경쟁하나”

교육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거나 몰라본다는 점이 사학들의 불만을 키우는 기본적인 요인이다. 세계 유수 대학들과 ‘미래 인재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동결, 입학금 폐지, 전형료 인하에 이어 사립대 재정지원까지 사실상 줄일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 교육을 사실상 보편교육으로 만들려면 일본처럼 정부가 사립대 경상비를 지원해주는 등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어 “건물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등 대학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사학이 감당해야 한다”며 “정부가 자율이란 명분으로 생색을 내면서 실제로는 사학을 지속적으로 옥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 재정지원 사업은 한국에만 남아 있는 독특한 제도다. 일본 문부과학성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정작 일본은 정부가 돈줄을 틀어쥐고 나눠주는 방식이 효율성이 없다고 판단해 ‘슈퍼 글로벌 대학 육성’ 등 몇 개만 남겨두고 모두 대학 경상비 지원으로 돌렸다. 임직원 고용 등 경상비 중 일부를 대학에 지원하되 생존은 철저히 시장 자율에 맡기는 구조다. 미국은 아예 사립대 재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박동휘/김봉구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