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2㎝에 담긴 사회적 함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필자 역시 오래전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른 때가 떠오른다. 고교 시절을 옭아매던 예비고사를 끝냈을 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본고사 생각은 잠시 뒤로하고 부산 남포동 태극당 빵집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해방감을 즐긴 기억이 난다. 그날 시내는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만 모아 놓은 것 같은 거대한 학생 놀이터 같았다. 그때 학생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 것이 뾰족구두라 불리던 ‘하이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이힐은 여성에게 소중한 소품이다. 필자 집에도 아내가 젊을 때 신었던 하이힐이 있다. 오늘날 하이힐의 평균 굽 높이는 8㎝ 정도라고 하는데, 거리에는 10㎝가 넘어 보이는 높은 하이힐(킬힐)도 종종 눈에 띈다. 반면 일반 구두는 2㎝ 안팎의 굽에 앞쪽이 유선형으로 예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일반 구두의 높이는 하이힐의 4분의 1이지만, 그 2㎝가 특별하다는 걸 최근 실감하게 됐다.

높이 2㎝는 한국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는 장애인에게는 결코 낮은 높이가 아니다. 장애인 관련 규정은 건물 출입구에 2㎝를 초과하는 높이의 문턱이 있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통행권을 보장하고, 노약자와 임산부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거리와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장애인이 외부 활동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물리적, 제도적 장벽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사혁신처장이 되고 나서 사회 약자를 위한 균형인사를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위해 ‘2㎝의 문턱’을 없애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 정부의 모든 행정은 장애인 등에게 있을 수 있는 차별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 구미(歐美)와 일본 등에선 신체장애인 외에 발달장애인 등 지적·정신적 장애인에게도 공직 문호를 개방한다고 한다. 우리 현실에서 당장 이런 제도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균형인사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비틀스의 팬인 필자는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전쟁과 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노래다. 노랫말에 담긴 의미와 감미로운 음률은 들을수록 새롭다. 오늘도 이 노래를 떠올리며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 한국 사회의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공직 문호가 활짝 열리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김판석 < 인사혁신처장 mpmpsk@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