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공정성 비판에 '2심서 잘해보라'는 재판부
IDS홀딩스 주범은 15년형인데
"지점장들은 죄 없다" 서둘러 판단
선고당일에 변론재개 통보
검찰의 재판연기 요청도 묵살
"돈 없겠지만 변호사 선임하라"
재판부 말에 피해자들 격앙
이형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2단독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IDS홀딩스 지점장과 임원 15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내린 뒤 울부짖는 피해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IDS홀딩스 사건은 2015년 한국경제신문 보도로 알려진 1조원대 다단계 금융 사기로 피해자만 1만 명을 웃돈다. 김성훈 전 대표는 2015년 6월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집행유예는 무죄나 다름없다”며 같은 행각을 벌였고 피해 금액도 당초 677억원에서 1조1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재차 기소된 김 전 대표는 올해 2월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대표와 함께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 가담한 주요 지점장과 임원 15명도 추가 기소됐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의 일방적인 진행으로 절차적 공정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피고인 측은 지난 15일 재판부에 지금까지 검찰조차 본 적 없는 추가 증거 자료를 제출하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이미 선고일이 잡힌 상태였다. 재판부가 검찰 측에 해당 자료와 함께 변론 재개를 통보한 것은 공판 시작을 겨우 네 시간 앞둔 오전 9시. 검찰 측은 당황했다. 반대 심문을 할 준비가 안돼 있다며 선고기일을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묵살했다. 선고 당일 담당 검사와 함께 이례적으로 부장검사(박은정 동부지검 공판부장)까지 출석한 이유다.
추가 증거는 지점장들이 2015년 4월 열린 한 회의에서 김 전 대표로부터 투자 권유 방법에 대한 강연을 듣는 동영상과 녹음파일이었다. 자신들도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김 전 대표에게 속았기 때문에 피해자와 다를 게 없다는 논리였다.
변론이 재개됐지만 제출된 증거 자료에도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았다. 동영상은 2016년 4월 촬영됐지만 녹음파일 두 개는 지난해 6월2일과 12일 각각 만들어졌다. 이들 녹음파일이 김 전 대표와 지점장 한 명이 기소된 5월20일 이후에 생성됐으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피고인 측 논리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꽤 있었다. 피해자들에 비해 상당한 금융 지식을 갖춘 지점장들이 연 90%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김 전 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들 지점장은 김 전 대표에게 계약서에서 ‘당신의 투자금이 다른 사람의 이자 지급에 사용될 수 있다’는 조항을 빼자고 건의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장인 이 부장판사는 선고를 앞두고 “1심 재판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1심 판결의 중요성을 애써 깎아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들이 추가로 기소되면 재판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판결 직후에도 피해자들에게 “혼자서 목소리를 높여도 의미있는 얘기는 극히 드물다”며 “돈 없는 건 알지만 변호사를 선임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최근 대법원에 맞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잇따라 내놔 세간에서 유명해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알려졌다. 가해자의 인권만큼이나 피해자들의 인권을 배려했다면 이렇게 쫓기듯 서둘러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박진우 지식사회부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