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100세 시대 효도버스
호모 헌드레드 시대다. 유엔이 ‘100세 인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게 2009년인데, 요즘 베이비붐 세대는 120세 시대를 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의료기술 발전으로 선진국에선 수명이 평균 10년에 2.5년, 1년에 석 달씩 늘어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8월 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불로장생은 모든 인간의 꿈이다. 그런데 수명 연장이 축복이기만 할까?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또 다른 전망을 보여준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로 유명한 이 시에는 이런 제사(題詞)가 붙어 있다. 아이들이 새장 속에 갇힌 무녀 시빌에게 뭘 원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죽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아폴론 신에게 부탁해 영생을 얻었으나 그에 따른 젊음을 달라는 것은 깜빡했기 때문이다. 육체가 늙어 가는데 죽지도 못하는 시빌은 쭈글쭈글 오그라들어 아이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영문학도였던 대학 시절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서늘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구청장이 된 지금도 어르신 정책을 다룰 때마다 그 충격을 떠올리며 이모저모 살피는 마음이 된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100세 시대가 행복이 되려면 활기찬 삶도 보장돼야 한다. 서울 서초구가 어르신이 이용하는 시설들을 연결하는 효도버스를 구상하게 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효도버스는 복지관과 문화센터, 체육시설 등을 돌며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태워드린다. 올해 초 어르신 복합문화시설인 내곡느티나무쉼터를 열며 한 대만 운행했는데, 8월부터 서초 4개 권역에 다섯 대로 늘렸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더 확대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많은 곳은 25인승 한 대에 하루 135명이 이용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어르신 이용시설은 큰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야 하고, 정류장에 내려서 한참을 걷기도 한다. 지하도의 가파른 계단도 만만찮은 부담이다. 효도버스는 어르신들의 다리가 돼준다. 효도버스를 타면 여기저기 산재한 어르신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다. 어르신들이 건강하면 의료비 부담이 줄어 자식 세대의 어깨도 가벼워진다. 효도버스는 시설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등 두루 효자 노릇을 한다.

100세 시대지만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아직도 기대수명 80세 시대에 맞춰져 있다. 효도버스가 100세 행복으로 가는 작은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 백 년의 삶이 축복으로 바뀌는 비결은 활기찬 노년에 있다.

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