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신산업 R&D 성공 조건은 돈 아닌 규제완화"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의 성공이 예산 확보에 달려 있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개선이 함께 뒤따라야 합니다.”

백만기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63·사진)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산업 R&D의 성공 여부는 돈이 아니라 규제혁파에 달려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 단장은 지난 4월 전략단장(차관급 비상근직)에 선임됐다. 3조4000억원에 이르는 산업부 R&D 예산의 기획·전략 등을 총괄해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자리다.

“플랫폼 육성으로 R&D 정책 전환”

백 단장은 19년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리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에는 지식재산서비스협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국내 최고의 지식재산권(IP) 전문가로 꼽힌다. 변리사로 활동하기 전에는 21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78년 특허청 전자심사관으로 특채됐다. 1993년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산업과장 시절 미국의 반도체 반덤핑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 ‘미스터 반도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을 거쳐 1999년 특허청 심사4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산업기술 업무에 종사해온 만큼 R&D 정책 방향에 대한 소신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백 단장은 “세계가 ‘플랫폼 경제’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R&D 패러다임을 플랫폼으로 옮겨야 한다”며 “이런 취지에서 ‘산업플랫폼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플랫폼이란 산업 내 다양한 참가자가 기술과 데이터를 주고받도록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백 단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앞으로 산업 생태계를 지배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글과 아마존, 우버 등을 대표적인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으로 꼽았다.

백 단장은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는 말처럼 공공과 민간 영역에 널린 데이터를 잘 모아서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는 의료나 에너지 분야 데이터에 기반한 많은 서비스 기업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7일 ‘2017 산업플랫폼 콘퍼런스’를 열면서 당초 600석을 준비했는데 1500여 명의 청중이 몰려드는 것을 보며 플랫폼 비즈니스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 역시 이런 플랫폼 위주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백 단장의 견해다. 그는 “혁신성장은 단순히 공정경제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며 “공급 측면에서 생산자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혁파해야 빅데이터 발전”

전략단은 최근 지능형 빅데이터 기반 에너지,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초연결 차량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등 8개 산업플랫폼 후보 과제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런 신산업 R&D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는 하소연이 바로 나왔다. 예컨대 의료나 에너지 정보를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플랫폼은 규제 탓에 과제 발주조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백 단장은 “병원들은 많은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데이터 거래에 관한 근거 규정이 없어 참여를 꺼리고 있다”며 “에너지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공기업 역시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략단은 한국법제연구원과 개인정보의 빅데이터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등 ‘좋은 규제(화이트 레귤레이션)’를 입안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백 단장은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려는 노력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안마다 시장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