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이화여대 본관 앞 김활란 동상. 동상 앞에 친일행적을 알리는 팻말이 세워졌다. / 사진=조아라 기자 rrang123@hankyung.com
14일 이화여대 본관 앞 김활란 동상. 동상 앞에 친일행적을 알리는 팻말이 세워졌다. / 사진=조아라 기자 rrang123@hankyung.com
'굿바이 활란'. 지난 13일 이화여대 본관 인근 김활란 동상 앞에 팻말이 세워졌다. 이 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의 친일 행적을 알린다는 취지다.

팻말에는 '이화는 친일파 김활란의 동상이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김활란의 대표적 친일 발언과 행적이 적혔다. 이를 주도한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은 "김활란은 대표적인 거물급 지식인 친일파"라며 "팻말 설치는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과 방법이며 학교 본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적극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이들은 김활란 동상 앞 알림 팻말 설치를 놓고 학교 측과 대화를 벌였으나 학교의 공식 승인은 받지 못했다. 이화여대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교내 '건축물 명칭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았지만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기획단 정어진 단장은 "만약 학교 측이 팻말을 철거한다 해도 동상 앞에 있어야 의미가 있는 만큼 친일 행적 팻말을 다시 설치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설립자, 총장 등의 친일 논란이 있는 대학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올 4월 대법원이 고려대 설립자 인촌 김성수의 친일 행위를 최종 인정하자 '인촌 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당시 학교 측은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대자보를 때어냈다. 연세대에 동상이 세워진 초대 총장 용재 백낙준 역시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일종의 '근거'가 되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과거에는 학생들이 학교 설립자나 총장 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고 해도 근거가 부족해 어려웠다"며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 등이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 설득력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이화여대 사례처럼 팻말을 설치한 것은 합리적이고 신선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방 실장은 "이대생들의 팻말 설치는 친일 잔재를 훼손하는 등 과거 방식에서 한 단계 진화한 '대안 제시형'"이라며 "학교 측도 외면하지 말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이윤갑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대학 발전 등의 이유로 동상 설립 취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교육기관인 만큼 공과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학교 차원에서 설치 배경에 대한 설명 자료를 게시하거나 구성원 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면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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