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429조원의 2018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예산 증가율은 7.1%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최근 경제 양극화가 심화돼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문제는 복지지출을 급격히 늘렸을 때 발생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다음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공무원 증원,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등 4대 사업의 지출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재의 40% 수준에서 2060년에는 194% 수준으로 상승한다.

정부는 재정건전성 우려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 일부를 인상하고 지하경제 과세를 강화하며 일부 지출 조정을 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의 세입 증대 효과는 크지 않고, 지하경제 과세 강화도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 추가적인 세입 증가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 나머지 과제가 지출 조정인데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말로만 하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여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전국의 초·중·고 학생 교육예산의 대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내국세의 20.27%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현재 교부율은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그동안 저출산 영향으로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으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GDP가 증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즉, 학생 수는 2000년 855만 명에서 2016년에는 664만 명으로 감소했고 앞으로도 줄어들 것인데 교육 교부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쌀 지원제도도 사정이 비슷하다. 쌀 소비는 급격히 감소하는데 쌀 생산은 줄지 않아 재고량은 계속 늘어만 간다. 1인당 쌀 소비는 1985년 144㎏에서 2016년에는 62㎏으로 줄었다. 그러나 쌀 생산은 매년 수요를 초과해 2017년 3월 쌀 재고량은 229만t으로, 적정 재고 70만t의 세 배를 넘었다. 200만t의 재고 비용으로 연간 6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이렇게 쌀이 남아도는데도 쌀 생산 농가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다. 2017년 쌀 생산농가에 보조하는 쌀 직불제 예산이 2조3000억원(공공비축비용 포함)으로 농업예산의 22%를 차지한다. 쌀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쌀 생산과잉 시대에 쌀 생산에 올인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이제는 제로베이스(원점으로 되돌아가 생각)에서 기존 예산 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 대부분의 예산은 기존 예산의 골격을 유지한 채 일부 조정한다. 예산실 직원의 담당 업무가 1~2년 만에 바뀌고 불과 수개월 예산심의 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므로 수백조원의 예산을 매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또 톱다운(하향식)예산이라고 해서 예산 사업의 결정권을 각 부처에 많이 주다 보니 각 부처는 기존 사업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한다.

개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예산을 줄일 경우 기득권층의 반발이 크다는 것이다. 1984년 물가안정 차원에서 예산을 전년과 동액으로 편성했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감액 예산이었다. 군부가 힘이 셌던 그 당시 군인들이 예산실에 권총을 차고 나타나 예산 삭감에 항의하기도 했다. 외부적인 개혁 압력이 강력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근본적인 개혁은 어렵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적 개혁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개혁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예컨대 ‘재정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앨 고어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정부 뜯어고치기(Reinventing the Government)’라는 개혁 작업을 한 바 있다. 통상적인 예산심의 과정에서 개혁할 경우 이해관계자들이 ‘다른 기관은 조용한데 왜 당신만 개혁한다고 설치는가’라는 식으로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재정개혁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됐고 2020년까지는 선거가 없으므로(지금 시작해도 재정개혁이 실제 반영되는 것은 2019년 예산이므로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와는 무관) 정치적으로도 개혁 작업을 하기에는 골든 타임이다.

최종찬 <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전 건설교통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