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통령 첫 'DMZ 동행' 불발
문재인 대통령, 정상회담서 제안…고민하던 트럼프 "OK"
트럼프"다음엔 반드시 DMZ 방문하고 싶다"
"두 정상, 시도만으로도 동맹의 의지 보여줘"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단독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DMZ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었는데 잘됐다”고 화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DMZ에 간다면 나도 동행하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같이 간다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DMZ 동반 방문 시도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우선 ‘깜짝 이벤트’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를 할 수 있었다. 북한 땅 코앞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강력한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DMZ를 방문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과 DMZ에서 만나는 데 성공했다면 사상 처음으로 한·미 정상이 함께 DMZ를 돌아보는 역사적 순간을 연출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DMZ 방문과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 시도는 ‘007 작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국내 취재진과 미국 측 수행기자단 모두 이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박수현 대변인 등과 함께 오전 7시께 청와대에서 헬기를 타고 DMZ로 향했다. 하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중간에 착륙해 차량으로 DMZ까지 이동해 트럼프 대통령 일행을 약 30분간 기다리다 청와대로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7시께 숙소인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용산 미군기지로 가서 ‘마린 원’을 타고 DMZ로 떠났다. 용산 미군기지와 DMZ 간 거리는 약 55㎞로, 헬기로 20~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등과 동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OP 올렛 초소를 찾아 문 대통령과 함께 한·미 군사동맹을 과시하고, 북한에 무언의 경고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DMZ 인근의 가시거리는 1마일(약 1.6㎞)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 일행은 목적지 5분 거리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과 미 비밀경호국의 권유로 착륙을 포기하고 용산 미군기지로 회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탄 차량 안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다 오전 9시께 DMZ 방문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역사적인 일로 강한 동맹의 상징이 될 예정이었다”며 “두 정상이 함께 계획했다는 사실이 그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에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환담하면서 “DMZ에 (국회 연설이 끝나고) 나중에라도 가볼 수 없느냐.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켈리 비서실장이 “(중국 방문) 일정상 안 된다”고 하자 아쉬워하는 기색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 대표들과의 환담에서도 “아침에 DMZ를 가려다가 안개 때문에 못 갔다. 다음에 오면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짙은 안개로 헬기 착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무장지대 방문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 “일기 때문에 회항했지만 두 정상이 보여준 비무장지대 동반 방문 의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도 단단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튼튼한 국방, 믿음직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는 국군과 주한미군의 노고를 격려하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