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음식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려면
두어 해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 입안 한가득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홈쇼핑 채널을 포함해 최소한 3~4곳에서 입을 커다랗게 클로즈업해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음식 먹기 장면이 주를 이루고 생활정보통에서도 맛집 소개에 적극적이다. 시골집에서 며칠 캠핑하며 삼시세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가 하면 냉장고 속 제한된 재료만으로 음식을 창조하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구수한 말투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가르쳐주는 인기 방송인은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수요일이면 연예인 미식가들이 음식 맛을 두고 품평회를 연다.

이런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은, 심지어 TV에 생전 처음 출연하는 평범한 마을 주민마저도, 모두가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정말이지 실감나게 먹는다. 특히 팔팔 끓는 냄비 속 새빨갛게 매운 국물에서 커다란 건더기를 건져내더니 호호 불지도 않은 채 입에 넣는다. ‘저러다 입천장이랑 혓바닥 다 데지, 맛을 어떻게 아나’ 하는 걱정과 달리 카메라 앞의 그들은 양 볼이 터질 듯 음식물을 씹더니 곧바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지를 척 올리며 맛있다는 반응을 보여준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예전엔 배우 하정우만 할 수 있었을 자연스럽게 잘 먹는 연기를 이젠 일반인이 다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맵고 뜨거운 음식까지 단번에 씹어 삼킬 수 있다니, 먹는 기량 혹은 연기력만큼은 한국이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1인 방송에서 가장 빈번한 주제도 음식 먹기다.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1인 방송은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면서 진행자가 자신의 개성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1인 방송에서조차 직접 요리해서 먹기라든가 혹은 그냥 별 이유 없이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하는 영상이 다수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모르는 사람이 먹어대는 영상을 보며 마치 거리악사에게 동전을 던져주듯 구경꾼들이 웹에서 보상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남의 식탐을 보고 있노라면 내 배가 든든해지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일까.

인간이 지닌 욕구 중 순간적으로 가장 강력하며 또 일생을 두고 반복되고 장기 지속되는 것이 식욕이라고 하니 이렇듯 음식 관련 방송이 경쟁하듯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식이 ‘보여주기’의 섭리와 엮이면 이상해지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권리가 쓴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소설 《폭식광대》에는 인류 최대 식성을 자랑하는 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기인을 찾아서’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삶은 달걀 여덟 개, 파전 두 장과 팬케이크 다섯 장, 부대찌개 2인분, 오므라이스, 떡만둣국, 냉면 두 그릇, 초밥 스무 개, 고기 완자 등등 끝도 없이 나오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었고 그걸로 유명해지게 된다.

‘폭식광대’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각종 많이 먹기 대회에 불려갔고 빨리 먹기 대회에도 나갔다. 물론 승리는 매번 그의 것이었다. 사람들은 폭식광대가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답답하던 기분이 뻥 뚫린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를 일컬어 인간 육체의 한계에 도전한 영웅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폭식광대에게는 비밀스런 의식이 있었다. 음식을 과하게 먹은 뒤에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 내내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야 했던 것이다. 그 토사물을 바라보며 문득 그는 자신이 한 마리 먹는 괴물이라는 상상을 했고 그것은 현실이 되고 만다.

주목을 끌기 위해 시작한 폭식이 결국 자신의 삶을 장악하고 파멸시켜버린 폭식광대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지만 경고하는 바가 있다. 음식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람이 살아가는 특별한 얘기가 담겨야 한다. 배가 고프고 마음이 허전할 때엔 음식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지 구경꾼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