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8) 나는 오늘 몇 점 짜리 엄마였을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회사 일은 재미있고 하루하루가 보람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편집장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내게 현실은 가혹했다. '아이를 잘 키우는 법', '아이 정서지능 높이기', '놀이도 교육이다' 등의 육아 기사를 매일 쓰는데 정작 내 아이들은 잠들기 전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당시 여섯 살이 돼 가던 딸은 부쩍 틱 증상이 심해졌다. 처음에는 눈을 깜빡깜빡하는 정도였는데 좀 나아졌다 싶다가 좀 지나서는 음성틱으로 발전해 갔다.
옆에서 듣고 있는 사람까지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하루 종일 ' 흠! 흠' 헛기침을 해대는데 정말 듣고 있기 힘들 지경이었다.
병원에도 가보고 아동 발달 심리센터도 가 봤지만 지적하지 말고 모르는척 하는 것 외엔 엄마로서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가 하루 종일 헛기침을 할라치면 시어머니는 "애가 엄마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라야 하는데 네가 맨날 늦게 오니 엄마 사랑이 부족해서 저러는 거다"라고 걱정하셨다.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리면 어릴 때 갓 만든 따뜻한 이유식을 먹었어야 하는데 냉동해뒀던 이유식을 해동시켜 먹고 자란 탓이라고도 하셨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아이가 이유식 먹을 즈음 복직을 한 나는 매일매일 이유식을 만들기 어려웠고 그때는 배달 이유식은 생각도 못했던 때라 한 번 이유식을 만들 때 한솥 가득 끓여 중간중간 재료를 하나씩 추가해가며 다양한 식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5일 치를 일회분씩 용기에 담아 냉동하고 데워먹이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댁에서 워킹맘의 형편을 잘 이해해주시고 아이 육아 대부분을 지원해주시는 고마운 상황이었음에도 '제 발이 저리다'는 말마따나 그 악의 없이 아이 걱정하는 얘기들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후벼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거 맞나? 난 몇 점짜리 엄마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잘 해내고 책임감 있는 직장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의 일상은 고달팠다.
내가 지금 직장을 다니며 이렇게 열심히 일해온 성과를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 후회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어린 시절은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데 허송세월할 시간도 없었다.
피로회복제, 홍삼, 비타민음료 등 먹어가며 주말 내내 항상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에 놀러 가서 밤이 될 때까지 놀았다. 집에 있을때는 TV 켜지 않으려 노력하며 숨을 곳도 없는(?) 집에서 매일 어디있는지 몰라 답답한 척 숨바꼭질을 했으며 자기 전에는 책 5권 이상 읽어주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엄마들이 아이 앞에서 행복하려며 자존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고 죄를 짓는 기분인데 아이가 일하는 엄마를 좋아하고 행복할 리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잠들기 전 엄마가 퇴근해서 오면 "책 읽어달라"고 성화였지만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생각하며 목청이 터져라 토끼가 됐다가 호랑이가 됐다가 신나게 읽었다.
책 읽어주기와 아이에게 주말 올인을 실천하다 보니 조금은 '이 정도면 나는 꽤 잘하고 있는 거야' 위안 삼을 수 있게 됐다.
언젠가부터 전화번호 누르는 법을 터득한 딸은 회사에 있는 내게 자꾸 빨리 오라 전화를 한다.
재촉한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에도 지장이 생겨서 "엄마 힘들게 하면 금방 할머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그날은 퇴근독촉 전화가 뚝 끊겼다.
밤 10시에 귀가했는데 문 앞에 선 아이가 "엄마!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는 거야?" 하고 원망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 나도 빨리 퇴근하려고 바쁘고 힘들었지만 너도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은 거 참느라 힘들었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려고 누운 딸이 내게 묻는다.
"엄마는 몇 살이야?"
"응~~엄마는 서른일곱!"
"난 다섯 살인데...난 어떻게 하면 엄마처럼 돼?!"
"너도 32년 있으면 서른 일곱 살 되고 멋진 어른 될 거야"
"와~~~~32년 지나면 내가 엄마랑 친구된다!"
'얘아 너 서른일곱 되면 난 할머니 된단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수성 예민한 딸이 슬퍼할까바 그냥 웃고 말았다 .
예전에 울 엄마가 '너랑 똑같은 딸 낳아봐라' 하시더니 정말 엄마 노릇하는 건 이렇게 힘들구나.
그래도 누가 '그 정도면 잘하고 있네. 힘내'라고 하면서 손 등에 '참 잘했어요' 도장 한 번 꾹 찍어주면 참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