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약가 협상… 다국적제약사만 배불리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아스트라제네카 간 타그리소 약가 협상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산 대체약이 있는데 두 번이나 협상이 연기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타그리소는 월 700만원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올리타는 260만원으로 타결된 게 맞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건보공단과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간 폐암 치료제 타그리소 약가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신약 출시를 위해 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시판 허가를 받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적정성 평가를 받은 뒤 건보공단과 60일간 약가 협상을 한다. 협상에서 약값이 정해지면 환자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저렴한 값에 약을 쓸 수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비급여가 돼 환자가 약값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건보공단과 아스트라제네카 간 타그리소 약가 협상 마감일은 지난 13일이었다. 하지만 협상은 두 차례 중단됐다. 다음달 7일 추가 협상을 한다. ‘60일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협상 기간을 25일 정도 연장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말기암 환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좀 더 고민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가 다국적제약사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약사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타그리소는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말기 폐암 환자를 위한 약이다. 한미약품의 올리타와 환자군이 같다. 타그리소와 동시에 약가 협상을 시작한 올리타는 약값이 정해져 협상이 끝났다. 건보가 타그리소 약값을 올리타보다 두 배 이상 올려달라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요구에 밀려 원칙까지 깨다 보니 국산 신약 올리타는 타그리소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약이라는 오해까지 생겼다.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도 전에 나쁜 이미지만 갖게 됐다.

정부의 다국적제약사 봐주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의사 등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된 노바티스의 일부 의약품에 6개월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을 했다. 백혈병 약인 글리벡 등을 쓰던 환자가 약을 바꾸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급여정지 처분을 하면 6개월간 시장에서 퇴출되는 효과가 있지만 과징금 처분은 시장에 주는 영향이 없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사가 생산하는 글리벡 복제약과 오리지널이 다르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원칙 없는 행정에 국내 제약사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또다시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