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징허게 잘 허요"
나는 직업상 공연장에 자주 간다. 공연장에 앉아 박수 소리를 들어보면 얼추 관객의 능력이 가늠되기도 하고, 공연 성과가 짐작되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인의 본능적 성품도 읽힌다. 한국인은 솔직하면서 정에 약한 모습이다. 나는 여간한 감동을 주지 않으면 박수가 잘 쳐지지 않지만,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라 어쩔 수 없다.

한번은 평생 소리를 해온 판소리 명창과 제자들의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제자들의 소리가 여창, 남창 할 것 없이 화려하게 진행됐다. 관객은 여지없이 추임새와 박수를 보냈지만, 내 손에선 박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거의 끝 무렵 어릴 때부터 이름을 날린 젊은 명창이 나왔다.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앞으로의 판소리 세계는 이 사람에게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내 손도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관객의 솔직한 표현 한마디. ‘징허게 잘허요!’ 참 많은 여운이 남았다.

서양 음악 공연장에서라면 ‘브라보!’ 하고 외쳤을 텐데. ‘정말 잘해요’가 아니라 ‘징허게 잘허요!’라니. 구수하기도 하고 정답기도 하고 솔직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징허게’는 ‘징그럽게’의 호남 사투리다. 큰 부정을 빌려 강한 긍정을 드러내는 반어법으로,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럼 그동안 매 순서에서 여지없이 ‘잘한다’와 ‘얼씨구’ 등 끊이지 않던 추임새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마음을 속이는 도구?

나는 여기서 정에 약한 한국인의 심성을 본다. 호남 말에 ‘보비유’라는 단어가 있다. 서울 사람에겐 낯설 듯한데 고수(소리를 반주하는 북 치는 사람)에겐 익숙한 말이다. 설령 소리꾼의 소리가 시원찮더라도, 장단을 조금 삐었더라도 창자의 소리에 맞춰주고 박을 맞춰주며, 또 빈말일지언정 잘한다고 추임새를 해줘 용기를 돋우는 것을 ‘보비유 해준다’고 한다. 관객은 내가 듣는 만큼 잘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긴장과 떨림에도 최선을 다하는 공연자에게 보비유와 추임새를 명약으로 건네줬을 터다. 진짜 잘하는 소리를 맞닥뜨려서는 ‘징허게 잘허요’라고 본심을 드러내는 현장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그래도 행복감을 느꼈다.

요즘 걸핏하면 소송을 걸거나 ‘법대로 하지요’라고 하는데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정으로 추임새로 감싸주면서 본인도 행복하고 상대에게 용기도 주는, 내 손에서 큰 박수는 드물게 나왔어도 ‘징허게 잘허요’ 한마디에 굳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대한민국 사람들이여! 예전처럼 우리의 덕스러움을 되찾아가면서 여유 있게 살아가자고요.

김해숙 < 국립국악원장 hskim12@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