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케네디 파일'과 음모론
1963년 11월22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카퍼레이드에 나섰다. 종일 비가 올 것이라던 예보와 달리 날씨는 맑게 갰다. 낮 12시30분, 첫 총성이 울렸다. 두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목을 뚫고 앞좌석의 코널리 주지사에게 꽂혔다. 곧 이어 세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했다.

두 시간 뒤 용의자 오스월드가 붙잡혔다. 그는 체포된 지 이틀 만에 경찰서 뒷마당에서 이송 도중 술집 주인 루비에게 살해됐다. 루비도 얼마 뒤 감옥에서 죽었다. 사건 배후와 목적 등이 불투명한 데다 이들의 잇단 죽음까지 겹치면서 케네디 암살 사건은 음모론의 단골소재가 됐다. 시중 루머가 300여 개에 이른다.

대표적인 음모론은 권력기관의 비밀공작설이다. CIA(미국중앙정보국) 과격 요원들이 공산권에 우호적인 케네디의 ‘CIA 해체 기도’를 막기 위해 소련에 망명한 전력이 있는 오스월드에게 범행을 맡겼다는 것이다. 케네디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FBI(미국연방수사국) 종신국장 후버의 막후조종설도 꾸준히 제기됐다.

군부 강경파 소행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을 선제공격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바람에 소련 핵 증강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마피아 개입설. 대통령선거에서 마피아 지원으로 승리한 케네디가 당선 후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앉히고 강력 단속에 나서자 응징했다는 설이다.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실추된 소련의 명예 회복을 위해 KGB가 암살했다는 설과 쿠바의 카스트로가 CIA의 독침공격 시도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했다는 얘기도 있다. 오스월드가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범행 두 달 전 멕시코시티의 쿠바 대사관을 방문했다는 게 근거였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설도 있다. 진짜 목표는 코널리 주지사였다는 것과 뒤 차에 있던 대통령 경호원의 오발이었다는 설이 그렇다.

이런 설들은 올리버 스톤의 영화 ‘JFK’등을 타고 세계로 확산됐다. 결국 조사위원회가 300만여 페이지의 문서를 분석하고 1만여 건의 정부 기록을 공개했다. 그런데도 음모론이 끊이지 않자 1992년 위원회는 ‘케네디 기밀 파일’ 공개 시점을 2039년에서 2017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6일 공개할 케네디 파일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진실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나온다고 해도 음모론의 싹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권력자에게 유리한 것만 공개했다”는 등의 또 다른 음모설이 나돌 것이란 얘기다. 음모론보다 더 무서운 게 음모론적 사고다. 색안경을 낀 사람들은 사건 당일의 날씨조차 ‘비’와 ‘갬’으로 달리 기억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