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피로감·스캔들에도
18~29세, 자민당 경제정책 지지
야당은 적전분열…참패 불러
'전쟁 가능한 나라'에 바짝
희망의당 등 보수야당과 손잡고
헌법 개정 논의 급물살 탈 듯
‘경제 치적’ 발판으로 여권 승리
이날 일본에서 중의원(하원의원) 465명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소선거구 289명, 비례대표 176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개헌 발의선인 310석(23일 오전 1시35분 현재)을 확보했다.
각종 ‘사학 스캔들’ 연루 의혹으로 지난 7월 도쿄 도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역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하고, 아베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을 때만 해도 자민당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전이 본격 시작된 뒤로는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이 일방적으로 선거전을 이끌었다.
아베 총리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장기 집권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또다시 승리한 비결로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성공’이 우선 꼽힌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은 이번 선거전 내내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 규모와 1인당 일자리 수 확대 등 경제적 치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젊은 층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10~11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19세 연령층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52%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30~40%대 지지율을 나타낸 다른 연령층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도 18~29세 젊은 층의 자민당 지지율이 41%로 희망의당(13%), 입헌민주당(6%)을 압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경기 활성화 영향으로 올 8월 유효구인배율(구인자 수/구직자 수)이 1.52배에 이를 정도로 고용환경이 개선된 점이 젊은 층의 여당 지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번 선거부터 18~19세 유권자 240만 명이 투표할 수 있게 된 점도 여당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야당, 反자민당 구심점 못찾아
야당의 분열도 자민당의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희망의당이 한때 제1야당 민진당을 흡수하는 등 기염을 토했지만 고이케 지사가 이번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공천 준비가 덜 된 신인 후보들을 대거 내놓은 뒤 지지율이 급락했다. 낙하산 공천 논란 등 구태정치 이미지가 재연되면서 ‘야당바람’에 제동이 걸렸다.
옛 민진당에서 분당한 입헌민주당이 뒤늦게 선전했지만 압도적인 대표 야당으로 자리 잡기에는 준비도 힘도 부족했다. 여기에 공산당 일본유신회 사민당 등 기존 정당들도 야권 성향 표를 분산하면서 반(反)자민당 세력은 구심점을 찾지 못했다. 소비세율 인상과 원자력 발전 확대 같은 자민당이 내놓은 주요 선거 공약에 대해서도 야당마다 온도 차가 나는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서 쟁점화에 실패했다.
‘전쟁 가능 국가’로 한 걸음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 1강(强)’ 구도가 재확인되면서 내년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아베 총리의 3연임 가능성도 높아졌다. 특히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9조 개정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당사에서 NHK와 인터뷰를 하고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 2항의 개정 논의를 촉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립여당만으로 개헌선(310석)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하면서 헌법 개정 작업에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이번 선거 전에도 여권은 개헌선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개헌에 부정적인 여론 탓에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이번 선거 압승으로 “헌법 개정을 위한 재신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명분을 여권이 확보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희망의당, 일본유신회 등 보수 야당과 손잡으면 헌법 개정 작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