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일본에선 '산학일체'가 대세… 한국은 '산학 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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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포럼 2017
스탠퍼드대엔 CEO가 2000명
'교수=기업가' 정신으로 무장
고급 두뇌 실리콘밸리에 공급
대학은 단기간에 일류 반열에
서울대 교수는 저마다 '총장급'
개개인의 역할 독립성에 치중
"산학협력은 공대만의 일"
대기업 임원의 교수채용 반발
국내대학은 '연구 하청'으로 전락
기업들, 건물만 지어주고 대학은 기업 '주문'대로 따라
정작 기술개발은 해외대학에 맡겨
스탠퍼드대엔 CEO가 2000명
'교수=기업가' 정신으로 무장
고급 두뇌 실리콘밸리에 공급
대학은 단기간에 일류 반열에
서울대 교수는 저마다 '총장급'
개개인의 역할 독립성에 치중
"산학협력은 공대만의 일"
대기업 임원의 교수채용 반발
국내대학은 '연구 하청'으로 전락
기업들, 건물만 지어주고 대학은 기업 '주문'대로 따라
정작 기술개발은 해외대학에 맡겨
‘산학협력’은 한국 제조업 발전의 근간이다. 국비 유학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지식을 습득한 교수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을 국산화하려는 기업에 기꺼이 힘을 보탰다. 어깨너머 해외 기업의 설계도를 훔쳐보며 기술을 익히던 기업인들에게 대학은 반드시 필요한 파트너였다.
이런 자생적 산학협력은 2010년대 초반 정부가 개입하면서 다른 ‘물길’을 타기 시작했다. 교육·산업·과학·중소기업 등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에서 수조원의 지원금이 대학으로 흘러가자 교수들은 ‘프로포절’(연구계획서 발표)만 잘하고, 논문만 그럴듯하게 써내면 따낼 수 있는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다. 기업과의 협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논문공장’으로 변질된 탓에 대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를 미국 스탠퍼드대 같은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다. ‘산학별거’ 시대로 전락한 국내 현실의 전말이다.
◆기업인 홀대하는 한국 대학들
미국 실리콘밸리에 ‘고급 두뇌’들을 공급하는 스탠퍼드대는 산학협력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일류’로 올라선 대학이다. 스탠퍼드대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풍을 이렇게 표현한다. “스탠퍼드대엔 2000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황성진 스탠퍼드대 경영학센터 석좌교수는 “수평적인 학풍을 강조하면서 나온 말인데 동시에 교수들이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서울대 2000여 명의 교수 대부분은 스스로를 ‘총장급’이라 부른다. 현직 총장도 여러 교수 중 한 명일 뿐이다. 스탠퍼드대와 마찬가지로 교수 개개인의 연구 독립성을 강조한 표현이긴 하지만 ‘상아탑’에 방점을 찍은 서울대 교수들의 ‘마인드’가 어떤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울대에서 산학협력이란 공대 내 일부 ‘친(親)기업’ 교수들의 일일 뿐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공대가 삼성 퇴직 임원들을 교수로 채용하려다 교수사회의 반발에 막혀 중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부가 산학협력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산학협력중점교수라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들 기업 출신 교수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찬밥 신세다. 서울의 한 주요대 교수는 “기업에서 온 교수는 2~3년짜리 계약직에 정교수들의 조교 역할에 그치는 게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들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대학들이 추구하는 산학일체형 모델은 ‘남의 나라’ 얘기다. 주요 대학 정책결정자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 등 산학협력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대학들을 줄기차게 견학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많은 견학에도 불구하고 산학일체형 캠퍼스를 조성한 대학을 국내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서울 주요대의 한 총장은 “대학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연구자금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만 해도 산학협력 지원을 위해 연간 수천억원을 투입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도 신산업과 관련한 투자는 미국 등 해외 유수의 대학에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 대기업 임원에게 왜 국내 대학과 협력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농업 빼고는 협력할 만한 게 없다고 하더라”며 아쉬워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와 기업의 관계조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기술 개발보다는 기업이 주문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하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토로했다.
◆산학협력 토대 구축은 장기투자 결과
전문가들은 ‘산학별거’를 ‘산학일체’로 전환하려면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에 공급할 인력 양성 정도에 그치고 있는 현재의 산학협력 개념을 미래 기술 공동연구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청 한양대 교육학과 석좌교수는 “해외 선진국에선 4차 산업혁명 경쟁을 위해 SBE(school based enterprise: 대학을 기반으로 만든 기업)의 활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학협력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장기 과제 중 하나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사례는 대학과 기업의 동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연세대는 당초 송도 제2캠퍼스를 연구개발(R&D) 메카로 만들려 했지만 교수들의 반발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젊은 교수들은 서울 강남에서 교육받고 있던 자녀를 송도로 데려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송도캠퍼스는 현재 1학년들의 공동학습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1990년대 만들어진 교원 업적평가 체계 역시 손봐야 할 대상으로 지적된다. 연구와 교육 위주의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이런 자생적 산학협력은 2010년대 초반 정부가 개입하면서 다른 ‘물길’을 타기 시작했다. 교육·산업·과학·중소기업 등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에서 수조원의 지원금이 대학으로 흘러가자 교수들은 ‘프로포절’(연구계획서 발표)만 잘하고, 논문만 그럴듯하게 써내면 따낼 수 있는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다. 기업과의 협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논문공장’으로 변질된 탓에 대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를 미국 스탠퍼드대 같은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다. ‘산학별거’ 시대로 전락한 국내 현실의 전말이다.
◆기업인 홀대하는 한국 대학들
미국 실리콘밸리에 ‘고급 두뇌’들을 공급하는 스탠퍼드대는 산학협력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일류’로 올라선 대학이다. 스탠퍼드대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풍을 이렇게 표현한다. “스탠퍼드대엔 2000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황성진 스탠퍼드대 경영학센터 석좌교수는 “수평적인 학풍을 강조하면서 나온 말인데 동시에 교수들이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서울대 2000여 명의 교수 대부분은 스스로를 ‘총장급’이라 부른다. 현직 총장도 여러 교수 중 한 명일 뿐이다. 스탠퍼드대와 마찬가지로 교수 개개인의 연구 독립성을 강조한 표현이긴 하지만 ‘상아탑’에 방점을 찍은 서울대 교수들의 ‘마인드’가 어떤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울대에서 산학협력이란 공대 내 일부 ‘친(親)기업’ 교수들의 일일 뿐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공대가 삼성 퇴직 임원들을 교수로 채용하려다 교수사회의 반발에 막혀 중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부가 산학협력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산학협력중점교수라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들 기업 출신 교수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찬밥 신세다. 서울의 한 주요대 교수는 “기업에서 온 교수는 2~3년짜리 계약직에 정교수들의 조교 역할에 그치는 게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들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대학들이 추구하는 산학일체형 모델은 ‘남의 나라’ 얘기다. 주요 대학 정책결정자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 등 산학협력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대학들을 줄기차게 견학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많은 견학에도 불구하고 산학일체형 캠퍼스를 조성한 대학을 국내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서울 주요대의 한 총장은 “대학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연구자금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만 해도 산학협력 지원을 위해 연간 수천억원을 투입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도 신산업과 관련한 투자는 미국 등 해외 유수의 대학에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 대기업 임원에게 왜 국내 대학과 협력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농업 빼고는 협력할 만한 게 없다고 하더라”며 아쉬워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와 기업의 관계조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기술 개발보다는 기업이 주문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하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토로했다.
◆산학협력 토대 구축은 장기투자 결과
전문가들은 ‘산학별거’를 ‘산학일체’로 전환하려면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에 공급할 인력 양성 정도에 그치고 있는 현재의 산학협력 개념을 미래 기술 공동연구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청 한양대 교육학과 석좌교수는 “해외 선진국에선 4차 산업혁명 경쟁을 위해 SBE(school based enterprise: 대학을 기반으로 만든 기업)의 활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학협력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장기 과제 중 하나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사례는 대학과 기업의 동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연세대는 당초 송도 제2캠퍼스를 연구개발(R&D) 메카로 만들려 했지만 교수들의 반발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젊은 교수들은 서울 강남에서 교육받고 있던 자녀를 송도로 데려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송도캠퍼스는 현재 1학년들의 공동학습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1990년대 만들어진 교원 업적평가 체계 역시 손봐야 할 대상으로 지적된다. 연구와 교육 위주의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