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전격 용퇴를 발표한 시점을 전후로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미래전략실(미전실) 출신 고위직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1년 넘게 꽉 막혀 있던 중장기 전략과 인사 기능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정비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권 부회장이 맡고 있는 DS(반도체·부품)부문장에 대한 후임 인사도 다음주 단행될 전망이다.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업 복귀하는 미전실 임원들

15일 삼성 주요 계열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안식년에 들어갔던 김용관 삼성전자 부사장과 권영노 삼성물산 부사장이 지난주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SDI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이들은 과거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 전략팀 소속이었다. 지난 3월 미전실 해체 이후 안식년에 들어가 휴직 상태였다가 6개월여 만에 현업으로 복귀했다.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사장)도 올해 말 단행될 사장단 인사를 전후로 삼성전자 경영진에 중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사장은 그동안 미전실의 전신인 비서실 시절부터 그룹 전체의 전략 재무 인사 감사업무 등을 두루 담당해 향후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 3월 미전실 해체 당시 최지성 실장(부회장) 및 6명의 다른 미전실 팀장들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따른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미전실 출신 고위 임원들을 다시 중용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에 대해 “핵심 인재를 필요 시점에 적기 기용한다는 인사 원칙에 따른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미전실 출신 임원들의 복귀도 이 같은 기조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식년에 들어갔던 4명의 부사장도 일부만 현업에 복귀했다. 삼성 측은 미전실 임원들의 복귀가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삼성 측이 미전실과 같은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전략과 인사 등 중장기 경영 전략과 계열사 사업 조정 및 고위 경영진에 대한 평가·지원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이 지난주 퇴임 발표문에서 “(회사가 내고 있는 사상 최고 실적은)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던 이유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의 중장기 전략과 인사 업무 등을 총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내부에서는 정 전 사장이 돌아와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속도 내는 권오현 후임 인사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함께 겸임하고 있는 DS부문장에 대한 후속 인사는 이르면 이번주 단행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내년 3월 퇴진하기로 했지만 DS부문장은 바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다”며 “한시도 비워놓을 수 없는 자리여서 곧 후임자가 임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사회나 주주총회 절차도 필요 없어 언제든지 가능하다.

DS부문장은 삼성전자 실적을 떠받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스템LSI사업부, 파운드리사업부 등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자리다. 반도체총괄을 담당하는 김 사장이 후임 DS부문장으로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권 부회장이 맡고 있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에 대한 인선은 계열사 사장단 인사 등과 맞물려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 부회장도 내년 3월까지는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장단 인사 시점은 유동적이다. 삼성 내부에선 권 부회장이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까지 기다리지 않고 용퇴 결정을 내린 것이 그룹 쇄신 인사를 앞당길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달 말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삼성전자 및 전자 계열사의 주요 경영진 인사와 조직 개편안을 논의한 뒤 다음달 초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CEO 추천위원회’와 같은 경영진 선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는 반론도 있다. 과거 삼성그룹은 매년 12월 초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임직원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 말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사장단 인사를 걸렀다. 미뤄진 임원 인사는 지난 5월 단행했지만 규모는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번 인사 폭은 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년 동안 사장단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