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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 칼럼] 두유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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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 칼럼] 두유의 재발견
    고대 한국과 중국에서는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의 아기에게 모유 대신 콩즙을 먹였다고 한다. 콩을 물에 불린 뒤 마쇄기로 곱게 갈아서 숟가락으로 떠 먹였다. 두유(豆乳·soybean milk)라는 이름도 ‘콩에서 나는 젖’으로부터 나왔다. 젖 뗄 무렵 이유식이나 아픈 사람들의 기력 회복을 돕는 데도 요긴했다.

    두유는 우유와 비슷한 영양소를 갖고 있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유기물 성분이 많다. 성장을 돕는 리신과 신진대사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은 신체 노화를 늦추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두유는 알칼리성 식품이어서 육류 섭취로 산성화된 현대인의 체질을 중화하고 영양 균형을 잡아주는 데 효과적이다. 우유의 유당(乳糖)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두유의 주재료인 콩에는 동맥경화를 막아주는 오메가3가 많이 들어 있다. 이소플라본 성분은 뼈의 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을 예방해준다. 이소플라본은 몸속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폐경기 여성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꼽히는 에콰도르의 질병 없는 마을 빌카밤바(Vilcabamba) 사람들은 콩을 주식으로 먹는다. 모든 주민이 유기농 콩으로 건강을 유지한 덕분에 이 마을은 ‘면역의 섬’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콩과 마늘 수확량이 많은 지역 주민이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콩에는 단백질이 40%나 들어 있고 탄수화물이 30%, 지방이 15∼20% 함유돼 있다.

    국내에서 두유가 일반식품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8년부터다. 소아과 의사인 정재원 씨가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어린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했다. 그는 매일 밤 부인과 함께 맷돌로 콩을 갈아 하루 40~50병의 두유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정소아과에 가서 회복됐다는 소문이 퍼지며 환자가 몰렸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그는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하고 하루 15만 병씩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식물성(vegetable·베지터블) 우유(milk·밀크)라는 뜻에서 제품 이름을 ‘베지밀’로 지었다. 베지밀은 지금까지 약 150억 개 팔렸고 아시아, 유럽, 서아프리카, 중동 등 15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현재 두유 회사는 10여 군데로 늘었다. 정식품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을 통해 경쟁회사에도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정식품의 두유 시장점유율은 51%로 압도적인 1위다. 국내 두유산업을 개척한 정재원 정식품 창업자가 그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세. 자신의 건강 비결로 늘 두유를 꼽더니 천수를 다 누리고 갔다. 게다가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했으니 덕도 많이 쌓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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