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72)는 행동경제학의 대가다. 특히 인간의 제한된 인지 능력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행동금융 분야의 개척자 중 하나다.

신고전파로 대표되는 기존 주류 경제학은 이론을 전개할 때 언제나 주어진 정보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이콘(econ·경제적 인간)’을 가정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한다.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을 통해 제한된 상황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선택을 해야하는 현실 생활의 인간을 전제로 연구했다. 노벨위원회는 탈러 교수가 현실에 있는 심리적인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 분석의 대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평가했다.

탈러 교수는 심성 회계라는 이론을 개발했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내리는 결정에 주목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단순하게 재정적 결정을 내리는 지 설명했다. 또 손실을 기피하는 태도를 통해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을 때보다 소유하고 있을 때 같은 물건을 더 아낀다는 소유 효과도 설명해냈다.

그의 이런 이론과 실험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년을 위해 저축하거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등의 계획이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를 단기적인 유혹에 굴복하는 데 있다고 봤다.

탈러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행동경제학으로 해석했다. 비이성적인 인간의 과잉 확신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현상을 과잉 확신이라고 정의했다. 특정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올 것이냐고 질문할 경우 90% 이상이 ‘중간 이상은 갈 것’이라는 답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는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도 금융회사 임직원이나 일반인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나는 괜찮을 것’ ‘나만 재미를 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과잉 확신에서 비롯됐다고 이해했다. 경제학계에선 탈러 교수가 넛지를 활용한 방법론으로 빚더미에 앉은 미국 상황을 제대로 분석했다고 호평했다.

그는 1980년 논문 ‘소비자 선택의 실증이론’을 발표해 넛지 이론의 토대를 닦았다.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이 논문을 행동경제학의 시초라고 극찬했다. 자신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공을 탈러 교수에게 돌렸다.

탈러 교수는 1987~1990년 학술지 ‘경제학 전망’에 ‘이상 현상들’이라는 주제로 기존 경제이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연재하는 논문을 실었다. 연재 논문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글들을 모아 ‘승자의 저주’라는 책으로 펴냈다. 저축, 투자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논문도 썼다. 단행본으로는 ‘준합리적 경제학’ ‘넛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이 유명하다.

국내에서 ‘넛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탈러 교수도 유명세를 탔다. ‘넛지’는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여기에 맞춰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제도를 설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았다.

예컨대 남자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일 게 아니라 소변기 중앙기에 파리 그림을 그리거나 축구 골대를 만들어 남성들이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을 자연스럽게 줄이도록 유도하는 게 ‘넛지’의 단적인 예다.

경제학계에서는 행동경제학이 1970년대부터 발전됐는데 그 초석을 놓은 게 인간은 동등한 규모의 이익 보다 손실을 싫어한다는 내용을 설명한 카먼 교수라고 말한다. 여기에 탈러 교수가 심성 회계로 카먼 교수의 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평가한다. 탈러 교수의 심성 회계를 확장하면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오지열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탈러 교수의 이론은 마케팅 분야에서도 많이 차용된다”며 “소비자들이 여러 번의 판단과 생각을 기피하기 때문에 한 번에 돈을 내고 즐길 수 있는 여행상품을 선호하고, 이것이 패키지 상품이 확산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