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몰락 이후 70년 만에 극우 정당이 독일 의회에 입성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24일(현지시간)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12.6%의 깜짝 득표율을 올리며 제3당 자리를 꿰찼다. 독일 시민의 20% 이상으로 불어난 이민자와 중동에서 몰려든 난민에 대한 우파의 반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反난민-독일 정체성 강조

독일 극우당 의회 입성… '메르켈 난민수용'에 보수층 등 돌렸다
알렉산더 가울란트 AfD 공동대표는 이날 출구조사 발표 직후 “우리는 해냈다. 국가를 변화시킬 것이다. 메르켈을 쫓아버릴 것이다”며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4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반(反)난민·반유로화를 내세운 AfD와의 협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25일 기자회견에서 AfD에 대해 “국가의 외교정책, 난민정책 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외신들은 AfD의 연방의회 입성은 독일 사회에 충격적인 일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시대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왔다. 이런 가운데 “나치군을 자랑스러워하자”며 ‘독일 정체성’을 강조하는 AfD가 그간의 교육과 법, 제도를 뒤집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방의회 관례대로라면 제3당은 부의장직과 예산위원장직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AfD는 2013년 2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위기 상황에서 ‘반유로화’를 내건 경제국수주의 정당으로 출범했다. 이후 2015년 중동 난민 수천 명이 유럽으로 밀려들어오면서 반난민·반이슬람 정서에 기대 급속히 우경화했다. 그해 메르켈 총리가 기존 방침을 뒤집고 중동 난민을 전격 수용하자 AfD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실망한 보수층이 이탈하면서 AfD 지지율은 한때 15%대까지 치솟았다.

소셜미디어는 AfD가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며 지지세를 확장하는 데 이용한 최대 무기였다. AfD의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독일 내 모든 정당을 압도했다. 지난 1~10일 수집된 100만 건의 정치 트윗 분석 결과 AfD가 해시태그된 게시물이 30% 이상으로 집계됐다.

◆설 자리 좁아진 중도

AfD의 성공은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환멸과 분노를 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및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이 부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슈피겔온라인은 AfD의 입성으로 독일 정치가 ‘양당체제’에서 ‘균열적인 다당체제’로 변모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총선 결과 8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AfD가 4년 뒤 총선에서도 상수로 존재할 것이란 뜻이다.

극우 정당의 득세는 중도층의 퇴조로 나타났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기독사회당(CDU·CSU) 연합과 마르틴 슐츠 대표가 이끄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의 합산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들 양대 대중정당의 합계 득표율은 2013년 67.2%에서 53.5%로 쪼그라들었다. 메르켈 총리가 동성혼 허용, 난민 수용 등 진보적 의제를 채택하며 사민당 총리 후보인 슐츠 대표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보수층 이탈을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그의 ‘중도 껴안기’ 전략이 되레 중도층의 입지를 축소시킨 결과를 낳은 것이다.

AfD의 의회 입성과 함께 친기업 자유주의 성향인 자유민주당(FDP) 역시 지난 총선에서의 참패를 딛고 의회 복귀에 성공했다. 이로써 독일 연방의회는 중도좌파 성향의 녹색당,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좌파당과 함께 6당 체제를 꾸리게 됐다.

◆최악의 성적 거둔 사민당의 앞날은

독일 좌파를 대표해온 사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몰락’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2009년 총선에서 23%, 2013년 25.7%를 얻은 사민당은 이번 총선 결과 20% 문턱을 겨우 넘었다.

독일 언론들은 사민당이 진보적 ‘야성’을 되찾기 위해 대연정을 깨고 제1 야당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사민당의 간판으로 나선 슐츠 대표 겸 총리 후보가 대표직을 유지할 전망이다.

사민당의 패인은 메르켈 총리에게 진보적 의제를 빼앗기면서 차별화에 실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강성 노조 기반의 사민당이 전기차 생산 할당제를 주장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이 4차 산업혁명 경쟁에 뒤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진 상황에서 사민당의 정책이 혁신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