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회사들이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업체인 브라질 ‘발레’로부터 대규모 장기 운송 계약을 따내면서 조선업계에도 화색이 돌고 있다. 하지만 일부 물량은 중국조선소로 발주될 것으로 보여 국내 조선·해운업체 간 상생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폴라리스쉬핑, 팬오션, H라인해운, SK해운, 대한해운 등 국내 해운사 5곳은 총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초대형광석운반선(VLOC) 20척을 건조할 국내외 조선소를 선정하고 있다. 한번에 철광석 32만~36만t을 실어 나르는 이 VLOC는 척당 가격이 7500만달러대로 향후 20~25년간 브라질과 중국을 왕래하게 된다.

VLOC 건조 경험이 풍부한 현대중공업은 폴라리스쉬핑(10척)과 대한해운(2척)으로부터 수주가 유력하다. 삼성중공업은 VLOC 건조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감 확보에 성공해 팬오션(4척), SK해운(2척) 등과 건조 협상을 하고 있다. VLOC 건조 경험이 많은 대우조선해양은 ‘저가수주’를 막은 정부 가이드라인의 영향으로 이번 수주엔 실패했다.

조선업계는 ‘발레발(發) 낭보’가 업계 일감으로 100%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에 발주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A해운사 관계자는 “VLOC를 한국에서 건조하면 중국보다 척당 1000만달러가량 가격이 올라간다”며 “중국 조선소들이 최근 선박 건조 대금의 90~100%까지 지원해주겠다고 설득하고 나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선복 과잉과 ‘일감절벽’에 시달리는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국내 해운사가 국내 조선소에 발주하는 ‘상생 문화’와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조사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중국과 일본 선주의 자국 조선소 발주 비중은 각각 87%와 64%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55%로 가장 낮다. 국내 선주가 발주한 34척 선박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5척은 중국에서 건조됐다.

국내 조선소가 수주한 물량 가운데 자국 선사 발주 비중도 16%로 일본(47%)이나 중국(19%)에 뒤처진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해운사의 수요 선종(벌크선, 유조선)과 조선사의 주요 공급 선종(LNG선, 컨테이너선)이 달라 조선·해운 간 생태계가 붕괴된 상태”라며 “과거 해운사 수요를 충족시켜온 중형 조선소가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이 같은 괴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