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대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해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우리 역사에도 사회지도층이 앞장서 나라를 지킨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문이 그런 예다. 충무공의 후손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의병항쟁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지키다 순국했다. 11대손인 이민화 선생은 독립군 양성 교관으로 활약하고, 청산리대첩 등 여러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지도층에선 희생정신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일부 고위 공직자와 자녀의 병역이행 행태는 금수저 논란을 일으키며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
‘오블리주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 없이 명예만 챙기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에 국민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의 병역 기피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2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병무청이 2004년부터 추진한 ‘사회 관심계층’ 병적 별도관리법안이 13년 만에 드디어 시행되는 것이다. 기존 관리 대상이 국회의원 등 일부 고위 공직자와 자녀 등에게 국한됐다면 이제는 4급 이상 공직자와 자녀, 종합소득 과세 표준액 5억원 이상 고소득자와 자녀, 체육선수와 연예인까지 확대됐다. 대상 인원은 3만2000명가량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18세부터 병역 의무가 종료될 때까지 병역 이행 전 과정을 철저하게 검증한다. 병역 면탈이 의심스러우면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권을 활용해 집중 수사하는 등 병역 비리를 예방하게 된다.
공정 병역의 초석이 될 이번 조치로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이용한 병역 회피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제도 정착을 위해선 이해당사자와 관련 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사회지도층은 병역이 그 나라 품격을 대변하고 첨단무기가 전세를 좌우하는 현대에서도 국가안보의 기반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아가 계층 간 반목을 해소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도 병역 의무를 자발적이고 자랑스럽게 이행하는 새로운 병역문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기찬수 < 병무청장 kchs5410@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