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 한 근 1만5000원→2만6000원… 국내 구기자 시장 키운 식품벤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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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광장과 맞닿아 있는 연갈색 2층 벽돌 건물 앞은 또 다른 풍경이다. 좌판 대신 마대자루를 짊어진 노인들이 모여있다. 자루 안에는 바짝 마른 빨간 알갱이들이 가득하다. 각 수확해 말린 구기자 열매다. 청양구기자원예농업협동조합이 잠시 후 이 열매들을 모두 사갔다.
조합 사무실에서 돈봉투를 들고 나오는 농민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날 구기자를 판 농민들은 구기자 한 근(600g)당 2만6000원씩을 받았다. 이들은 “술 한 잔 하자”며 기분좋은 발길을 재촉했다. 농민들의 웃음 뒤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 구기자 값이 크게 뛰었다. 구기자 포대를 옮기던 복영수 청양구기자농협 조합장은 “작년 초만 해도 한 근 가격이 1만5000원 선이었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말마다 청양에 머물며 구기자 농사도 짓고 있다. 그가 주도해 설립한 청양구기자수출영농조합은 청양읍 벽천 2리에 있는 1만여 평(3만3000여㎡) 땅에 구기자 비닐하우스 25개동(재배면적 6000여평)을 세워 구기자를 키우고 있다. 청양 구기자 농장 중 가장 큰 규모다.
유통업을 하던 홍 대표가 구기자 재배에 관심을 갖고 청양을 처음 찾은 건 2001년이다. 20대 중반부터 개인 사업을 해온 그는 1990년대 말 건강기능식품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홍삼을 생각했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았다. 정관장 한삼인 등 대형 브랜드들과 경쟁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게 구기자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구기자는 농민들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었다. 한의원이나 약초상 외엔 찾는 곳도 드물었다. 홍 대표는 당시 청양에 내려가 구기자조합장을 처음 만났을 때 일화를 들려줬다. “조합 사무실에 들어와 조합장에게 인사하고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는데 그 짧은 동안에 농민 세네명이 연이어 찾아와서 조합 가입비를 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더 이상 구기자를 키우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홍 대표는 반대로 생각했다.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제대로 된 상품만 개발하면 구기자 시장을 키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의학 서적과 국내외 논문을 읽으며 공부한 덕분에 구기자의 효능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거든요.” 중국에선 구기자를 약재뿐 아니라 식재료로도 널리 쓰고 미국과 유럽에선 고지베리(Goji Berries)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건강에 좋은 ‘슈퍼 푸드’로 소비된다는 사실도 홍 대표가 구기자 상품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2006년엔 한걸음 나아갔다. 구기자 추출물을 섞은 술을 내놨다. 백세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일명 ‘오십세주’가 술자리에서 인기를 끌던 시기다. 약주 시장이 커질 거라 예상하고 그동안 사업을 통해 번 5억원 가량을 투자해 술을 개발했다. 구기자에 얽힌 중국 전설을 본떠 ‘할머니의 비밀’이라고 이름붙였다. 하지만 이 즈음 대형 주류 회사들이 순한 소주들을 잇따라 출시했고 소주와 섞어마시던 약주들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할머니의 비밀도 시장에서 퇴장했다. 실패였다.
구기자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해 정면승부를 펼쳐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무렵이다.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들은 광고에 제한을 받는다. 홍 대표는 “정식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해 구기자 효과를 제대로 알리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청양구기자농협 조합장을 맡아 홍 대표와 손을 맞춰온 복 조합장은 구기자 건강기능식품이 나오면서 농민들에게 전혀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복 조합장은 “조합원 980명 중에는 이름만 걸어놓거나 텃밭 수준의 구기자 농사 짓는 분들이 많았는데 구기자 가격이 오르면서 최근 2~3년 새 구기자 농사 규모를 키운 농가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와 복 조합장은 구기자 재배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안을 찾고있다. 구기자는 대개 9월부터 11월까지 4~5차례에 나눠서 수확한다. 한 나무에서 1년에 보통 두 번 열매를 딴다. 수확을 위한 인건비 부담이 작지 않다. 상당수 농가는 인력을 구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홍 대표는 비닐하우스 안에 구기자나무를 덜 심는 대신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혔다. 그 사이를 모터가 달린 기계가 지나가면서 구기자나무를 흔들어 다 익은 열매가 바로 그물에 떨어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작년엔 오미자로 만든 제품도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았다. 국내 오미자 주산지인 경북 문경의 농민들로부터 오미자를 납품받아 제품을 제조한다.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면 시장이 커져 회사와 농민이 함께 이익을 얻는 상생구조가 형성된다는 게 홍 대표 설명이다.
“외국에서 수입한 구기자, 오미자 원료로 제품을 만들 수도 있고 그러면 회사는 돈을 더 벌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제가 직접 키운 구기자, 바로 내 옆에서 내가 아는 농부가 키운 구기자로 제품을 만들었을 때만큼 자기 제품을 믿지는 못할 거 같아요. 자기가 완전히 믿지 못하는 제품을 고객들한테 팔 수는 없잖아요. 주말에 청양에서 구기자 농사를 지으면서 상품 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어요. 농식품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농사를 짓지는 못하더라도 농업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있어야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청양=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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