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치광이 전술'과 한·미동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미치광이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대방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어줘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협상술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때 활용한 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대통령의 예측불가성은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술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는 확실히 먹힌 것 같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공동 주최한 ‘한·미 전략포럼’에 참석한 30명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핵 대응만큼이나 한·미 관계의 앞날을 걱정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로 활동한 30여 년 경력의 한반도 문제 베테랑 조지프 디트라니는 “한반도 앞날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 때문에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미 관계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고 손사래를 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초대형 발언을 불쑥불쑥 던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한국에 수십억달러어치 무기판매 승인’이 그렇다. 웬디 커틀러 전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한·미 FTA 폐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한국은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협상장에 앉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한국 측 참석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산 무기 판매 승인 발언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한국의 기존 구입 계약을 재확인한 것인지, 무기를 더 사달라는 압력성 발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올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2회를 포함해 총 열여덟 번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 3일엔 사실상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여겨진 6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술을 비웃듯.

한 참석자는 “미치광이 전술이라도 아군·적군을 구분해야 한다”며 굳건한 한·미 공조를 주문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