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가 진짜 관심 있던 사항은 지극히 나의 직업적 범주와 관련된 일이었다. 경축 행사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고, 연주는 어떤 악단이 맡았는지, 공연물은 어떤 장르가 택해졌을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옛 왕실에서 국가적 의례와 의전은 바로 그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사상적 기반 내에서 선택되고 다뤄졌다. 그것은 또 통치 기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정됐기에, 국가적 의례가 던져주는 철학적 의미는 매우 컸다.
내 눈에 크게 띈 순서는 바로 오희옥 애국지사가 부른 ‘독립군 애국가’였다. 현재의 애국가 전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가락에 얹어 애국가를 부른 시절이 있었던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독립군의 애국가였다는 역사적 의미는 새롭게 인식했다.
정말 놀라웠던 일은 그분이 부르는 노래의 창법이었다. 내가 들은 그분의 노래는 애국가 가사로 부르는 ‘우리 민요’였다. 불과 300~400년 전 사람들은 오희옥 지사처럼 노래하는 게 자연스러운 창법이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여러 지역 민요는 바로 그 결과물들이다. 몇백 년간 우리 몸속에 체득돼 DNA에 자리해 있던 것인데, 엄숙한 의례 공간에서 확인하게 되니 마치 역사의 발견이라도 한 듯했다. 그분은 창법에서만은 제도적(서양음악적) 교육을 거치지 않았을 듯싶다.
우리는 광복 이후 모든 분야에서 서양을 닮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얼마나 의식하고 사는지, 또 우리의 얼과 혼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되새겨보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무척 많다. 역사의 정체성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문화에서도, 또 문화적 감수성에서도 정체성 고민은 수반돼야 할 터다. 우리는 짧은 세월 동안 이룬 일도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잃은 것도 매우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지금도 그분의 노래는 “동 해에에에물과 백 두우우 산이 마 르으으고 달 토오오 록---” 하고 들려온다. 대한민국 사람들이여! 제발 우리 국악을 이민 가게 내버려 두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김해숙 < 국립국악원장 hskim12@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