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개혁의 시대, 그 길목에 서서
그야말로 개혁의 시대이다. 바람 불면 꺼진다던 촛불이 뜨겁게 타올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법조계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적극 공감한다.

파티에서 술잔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놓고 샴페인을 부어 위에서부터 채워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386세대인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우리의 입시제도가 그랬다. 전국의 모든 대학, 모든 학과를 문과는 서울법대부터 학력고사 점수별로 채워나갔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도 전국의 법원을 서울중앙지방법원부터 성적순으로 채워나갔다. 이처럼 서열화와 소수 엘리트화에 익숙한 법조계는 그동안 국민과 떨어져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다.

이제 법원은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처음 제도를 마련한 취지에 맞게 국민 인권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변호사회도 법조브로커를 근절하는 한편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 옹호자이자 변호사회의 주역이 될 인재를 배출하는 로스쿨 제도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법조계 개혁을 실효성 있게 관철하기 위해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을 중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현재 개혁적인 성향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임명으로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아쉬운 점은 인사의 난맥상이다. 공직 후보자였다가 낙마한 경우나 가까스로 임명된 경우나 모두 개혁에 흠집을 내고 있다. 공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잘 살아온 자를 선발하는 것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인사청문회도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연이은 후보자들의 낙마를 지켜보면서 인사 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인사의 첫 번째 원칙이 아는 사람을 쓰는 것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아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 철저히 검증된 사람을 등용하라는 것이다.

현 정부의 개혁 의지에는 박수를 보낸다.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는 것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개혁은 힘을 잃게 된다. 코드인사보다는 이념을 떠나 능력 있는 인사를 중용해야 한다.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성경을 읽으려고 촛불을 훔쳐서야 되겠는가.

이찬희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chanhy65@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