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함대 가라앉는건 순식간… JY 부재로 글로벌 네트워킹 꽉 막혀"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CE)사업을 총괄하는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사진)의 기자간담회는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전시회 ‘IFA 2017’ 개막일(9월1일)을 하루 앞두고 최근 글로벌 시장 흐름과 삼성의 대응전략 등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윤 사장은 “참담하다” “두렵다” 등의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삼성 경영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내비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회사 중장기 전략에 차질을 줄 뿐만 아니라 미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간담회에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무선사업부장) 등 주요 사업부장이 동석했다. 다음은 윤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하반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이 중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선 여러 척이 선단을 이뤄 고기를 잡는 상황에 비유하겠다. 저와 같은 사업부장은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선단장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외부에서 격변이 일어나면서 경쟁사들이 경쟁적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M&A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사업부를 담당하는 일개 선장이 선단을 재편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무섭다는 느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보기술(IT)업계 변화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톱 함대라도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다. ”

"삼성 함대 가라앉는건 순식간… JY 부재로 글로벌 네트워킹 꽉 막혀"
▷이 부회장의 공백이 경영 차질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경영 전략 수립은 실제 현장을 보고 듣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글로벌 리더들과 만나 인사이트(통찰력)를 얻고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부재로) 지금 이런 게 꽉 막혀 있다. ‘이 부회장 공백이 별일 아니다’고 얘기하는 것은 선장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IT업계 경영자는 ‘졸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역사적으로 잘나가던 기업이 갑자기 망한 사례도 많다.”

▷지난달 25일 1심 선고 이후 이 부회장을 만났나.

“선고 이후엔 보지 못했다. 선고 이틀 전 면회에서 몇 가지 얘기를 나눴다. 비즈니스(사업)와 관련해 글로벌 1등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만큼 사업에 대해…(목이 멘 듯 울컥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기업에서 오너십은 정말 중요하다. 저도 제 사업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부회장에 비하면 10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다. ”

▷M&A를 추진하다 무산된 사례가 있나.

“인공지능(AI) 관련 업체인데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했다.”

▷기업명이 뭔가. 왜 M&A에 실패했나.

“구체적인 이름은 공개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업(M&A) 기회가 왔을 때 특정 상황과 관계없이 결행해야 한다. 제때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쳤다.”

"삼성 함대 가라앉는건 순식간… JY 부재로 글로벌 네트워킹 꽉 막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계열사 이해관계 등을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제가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컨트롤타워가 갑자기 없어지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내부 경영자끼리 의사소통은 어떤가.

“사업부장들이 모두 자기 사업에 집중하고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한다. 사장단 회의가 없어지면서 1년에 한 번도 못 보는 사람도 있다.

▷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신기술로 글로벌 IT업계가 급변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시장과 소비자를 중심으로 경쟁의 판을 바꾸려고 한다. 삼성전자는 다른 어떤 글로벌 기업도 보유하지 못한 독특한 장점이 있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IT, 가전사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와 네트워크 장비까지 생산한다. 이런 강점이 IoT 시대를 맞아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한다.”

▷지난 3월 인수한 미국의 오디오업체 하만과 어떤 시너지를 추진하고 있나.

“하만의 오디오 제품은 이미 국내 삼성디지털프라자에서 판매하고 있다. AI 스피커는 고동진 사장 주도로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내년 초 세계최대전자쇼(CES)를 기대해도 좋다.”

▷지난달 23일 공개한 갤럭시 노트8의 국내 가격이 궁금하다. 공개 당시 ‘100만원이 넘으면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고 했는데.

(고 사장) “일부 오해가 있었다. 노력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1자를 안 보는 것(100만원 미만을 의미)이 어려울 듯하다.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베를린=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