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만큼 신경 쓴 영상… 관객에 다가선 연출
지난 26일과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아가씨’(사진)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식으로 탈바꿈시켰다. 원작의 배경인 18세기 프랑스 귀족문화를 조선 영·정조시대 양반과 기방 문화로 옮겼다. 조선 민화의 색료에서 뽑아낸 듯한 빨간색 노란색 등 원색이 무대를 화려하게 채색했다. 27일 공연에 출연한 비올레타 역의 손지혜, 알프레도 역의 신상근, 제르몽 역의 양준모 등 출연진은 모두 한복을 입었다. 기생으로 그려진 비올레타가 입은 화사한 색상은 조선 선비들의 백의(白衣)와 대비됐다. 그들의 계급과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3막의 오페라가 중간 휴식 없이 130여 분간 열리는 동안 필자가 새삼 느꼈던 것은 ‘오페라 야외무대는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돼야 하는가’란 문제다. 야외무대에서 성악가의 존재는 실내 공연장보다 훨씬 작아 보인다. 이번 공연을 연출한 패션디자이너 겸 무대연출가 정구호는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상을 효과적으로 살렸다. 무대 양 옆에는 조선 회화를 담은 족자(簇子) 형태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객석 기준으로 왼쪽 스크린에는 주로 성악가의 전신과 배경이 담겼고, 오른쪽 스크린에는 주인공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는 클로즈업 영상을 띄웠다. 무대와 스크린의 공존을 통해 공연의 실연과 영상 중계가 동시에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스크린 화면도 여러 각도로 카메라를 이동시켜 무대 곳곳을 비췄다. 화면들은 정구호가 미술과 의상을 맡은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미장센을 연상케 했다. ‘동백꽃 아가씨’의 스크린은 관객과 무대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실용적 방편의 영상이었음에도 ‘보는 맛’을 살려 넣은 것이다. 스크린 자막도 족자 형태로 궁서체를 입었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형 야외극장에서 ‘토스카’를 관람했을 때의 아쉬움이 떠올랐다. 당시 무대와 객석의 어쩔 수 없는 거리감 때문에 오페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다. 이번 공연은 좌석에 상관없이 스크린을 통해 극에 몰입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정구호가 ‘연출가 노트’에서 제시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운 경험으로 남게 되는 오페라”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 무대였다.

‘동백꽃 아가씨’는 한국의 오페라 제작이 나아갈 또 하나의 방향성도 제시했다. 원작인 ‘라 트라비아타’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유 중 하나는 연출가들이 끊임없이 원작을 변형해 올리기 때문이다. 연출가의 실험은 고전에 대한 항생제 역할을 한다. 한국적 색채와 문화가 가미된 무대를 통해 고전의 한국적 해석을 자주 접했으면 한다.

송현민 음악칼럼리스트 bsts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