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군함도' 논란에서 생각할 것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영화 ‘군함도’의 역사 왜곡 논란이 거세다. 일제를 미화해서가 아니다. 조선인은 모두 불쌍한 피해자라는 기존 구도에서 벗어난 예상 밖 조선인들의 모습 때문이다. ‘군함도’는 일제가 무너지기 직전인 1945년 하시마섬의 지하 탄광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들의 탈출을 그린 영화다. 영화에는 한량, 조폭, 종군위안부, 포주, 변절자, 독립투사를 구출하러 잠입한 광복군 요원 등 다양한 조선인이 등장한다.
문제는 군함도에서의 참혹했던 실상을 묘사하기 위해 조선인 친일파들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조선인 노동자를 속이고 착취하는 친일파 관리, 일제에 위안부를 공급하는 조선인 포주, 일제의 앞잡이가 된 노무반장 등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더 나빠 보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선악 이분법이 가리는 진실
하지만 이 영화를 친일이나 역사 왜곡, 조선인 비하로 몰고 가는 건 심한 억지다. “위안부 중개 민간업자, 기생형 친일파들이 동족을 등친 것은 사실”(역사전문가 심용환)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군함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상업영화다. 허구(fiction)는 필수다. 사실과 허구를 어느 정도 비율로 어떻게 섞을지는 감독 몫이다. 뜻밖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군함도’는 박스오피스 1위를 금명간 ‘택시운전사’에 내줄 판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주목하고 싶은 건 “착한 조선인, 나쁜 일본인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제작 의도다. 힘을 앞세워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 제국주의는 명백한 악이다. 거기에 앞장섰거나 기생한 전범과 전범 기업들도 명백한 악이다. 그 악행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다 아는 이야기를 뻔한 구도로 풀어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 안에도 그런 세력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게 이 영화의 다른 점이다. 보기에 불편하다고 그런 사실을 외면해 버리면 그 또한 역사 왜곡이 된다.
의인의 연대를 넓히자
자연이 아름다운 건 다채로워서다.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나라나 집단도 통째로 나쁘거나 선하지는 않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을 배경으로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는 일본인 배우들이 출연한다. 극 중 일본 내각의 외무·내무대신 등 일제의 폭력성과 비도덕적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극단 ‘신주쿠양산박’ 소속인 이들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흔쾌히 출연했다고 한다. 박열의 변호를 자청해 사건의 진상 규명에 앞장섰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 역도 일본 배우 야마노우치 다스쿠가 연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일제 관련서들 가운데 《우리는 가해자입니다》(정한책방)란 책이 있다. 일본 공산당이 1928년 창간한 아카하타신문의 30~40대 기자들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가해자의 나라인 일본에서, 그것도 전후세대 기자들이 자국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고백했다는 점에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한국과의 위안부 관련 합의를 ‘불가역적’이라며 되레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그들이다. 이런 철면피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선의 부재’가 악이라는 말이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을 피해자인 우리조차 점차 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안의 의인들과 손잡고 연대를 넓혀 가는 것이 일본을 진정한 반성과 사죄로 이끄는 길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문제는 군함도에서의 참혹했던 실상을 묘사하기 위해 조선인 친일파들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조선인 노동자를 속이고 착취하는 친일파 관리, 일제에 위안부를 공급하는 조선인 포주, 일제의 앞잡이가 된 노무반장 등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더 나빠 보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선악 이분법이 가리는 진실
하지만 이 영화를 친일이나 역사 왜곡, 조선인 비하로 몰고 가는 건 심한 억지다. “위안부 중개 민간업자, 기생형 친일파들이 동족을 등친 것은 사실”(역사전문가 심용환)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군함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상업영화다. 허구(fiction)는 필수다. 사실과 허구를 어느 정도 비율로 어떻게 섞을지는 감독 몫이다. 뜻밖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군함도’는 박스오피스 1위를 금명간 ‘택시운전사’에 내줄 판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주목하고 싶은 건 “착한 조선인, 나쁜 일본인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제작 의도다. 힘을 앞세워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 제국주의는 명백한 악이다. 거기에 앞장섰거나 기생한 전범과 전범 기업들도 명백한 악이다. 그 악행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다 아는 이야기를 뻔한 구도로 풀어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 안에도 그런 세력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게 이 영화의 다른 점이다. 보기에 불편하다고 그런 사실을 외면해 버리면 그 또한 역사 왜곡이 된다.
의인의 연대를 넓히자
자연이 아름다운 건 다채로워서다.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나라나 집단도 통째로 나쁘거나 선하지는 않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을 배경으로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는 일본인 배우들이 출연한다. 극 중 일본 내각의 외무·내무대신 등 일제의 폭력성과 비도덕적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극단 ‘신주쿠양산박’ 소속인 이들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흔쾌히 출연했다고 한다. 박열의 변호를 자청해 사건의 진상 규명에 앞장섰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 역도 일본 배우 야마노우치 다스쿠가 연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일제 관련서들 가운데 《우리는 가해자입니다》(정한책방)란 책이 있다. 일본 공산당이 1928년 창간한 아카하타신문의 30~40대 기자들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가해자의 나라인 일본에서, 그것도 전후세대 기자들이 자국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고백했다는 점에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한국과의 위안부 관련 합의를 ‘불가역적’이라며 되레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그들이다. 이런 철면피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선의 부재’가 악이라는 말이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을 피해자인 우리조차 점차 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안의 의인들과 손잡고 연대를 넓혀 가는 것이 일본을 진정한 반성과 사죄로 이끄는 길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