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은 법령이 국회와 정부 부처 태만으로 제대로 개정되지 않아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모씨가 독립유공자 보상금을 손자녀 한 명에게만 지급하도록 한 독립유공자법 제12조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해당 조항에 대해 이씨는 2011년에도 똑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다. 헌재는 2013년 해당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위헌 조항은 개선되지 않아 이씨는 같은 법 조항에 대해 같은 이유로 또다시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헌재는 “보상금을 손자녀 한 명에게만 독점시키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상금을 받는 손자녀를 나이 순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도 비합리적인 방안으로 사회보장제도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보상금 지급 근거가 되는 조항을 바로 폐지하면 독립유공자 유족 모두 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2015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위헌 조항을 없애는 대신 특정 시점 이후 효력을 잃게 해 국회나 정부가 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해당 조항을 ‘보상금을 받는 손자녀 한 명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생활 수준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개정하는 데 그쳤다. 보상금을 손자녀 한 명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헌재의 결정 취지는 반영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도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보훈처는 또 “국가 재정 여건 등 제반 사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에 따른 법 개정이 아니라는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는 국회와 정부의 태만 때문에 헌재가 위헌 결정한 법률의 개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