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생존법 배우자"…일본에서 답 찾는 세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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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물가·고령화 먼저 겪은 일본
공격적인 돈풀기로 활기 되찾아
근로자·협력업체 중시 문화도 일조
부동산·해외투자 과열된 중국
30년전 일본처럼 거품 터질라
당국, 기업대출 등 점검 나서
공격적인 돈풀기로 활기 되찾아
근로자·협력업체 중시 문화도 일조
부동산·해외투자 과열된 중국
30년전 일본처럼 거품 터질라
당국, 기업대출 등 점검 나서
1970년대 말, 서구권에선 일본 배우기 붐이 일었다. 세계 청년들이 일본 전자회사 소니의 워크맨에 열광했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업계는 일본 도요타자동차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일본이 탈산업화 시대의 모범생이 된 비결을 다룬 에즈라 보걸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리서치센터 소장의 1979년 책 《넘버 원 일본(Japan as No.1)》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의 제조업과 사회 체제를 배우자는 열풍은 그러나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사그라들었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빠져들었다. 일본식 모델은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면교사 대상이 됐다.
◆서구권, 일본 저성장 대응법 배우기
201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서양에서는 ‘일본식 모델’의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이 겪은 저성장과 고령화 등이 지금 서구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서구 주요 국가는 만성적 저성장과 오르지 않는 물가 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일본화’되고 있다. 약 20년 앞서 비슷한 문제를 겪은 일본이 지금 이 정도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선방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서구 국가들이 제안하는 해법은 대부분 일본에서도 생각한 것이다. 예컨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쓰고 있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주장하는 ‘구조적 장기침체’ 대응책(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병용)과 가장 가깝다.
부작용도 있지만 어쨌든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이 금융 규제를 강화한 것도 금융위기 후 서구권에서 진행된 양상과 비슷하다.
이민자 증가와 소득 불평등에 따른 포퓰리즘의 득세를 찾아보기 힘든 것 역시 서구권에서 일본을 부러워하는 요인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등 서구 국가들은 포퓰리즘으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소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사회의 단일성을 유지했다. 이는 최근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사회 통합과 안정에는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다만 최근엔 노동력 확충을 위해 이민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일본식 세제도 서구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 전 일본 개혁경제장관은 “일본의 (최고) 상속세율은 55%에 이른다”며 “일본이 계급사회로 가지 않은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일본 기업이 서구식 주주 자본주의 대신 근로자와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문화를 버리지 않은 것은 이들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제약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사회 내 불만을 다독이는 역할도 했다.
◆中은 일본 거품시대 재연 경계
일본의 저성장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서구 국가만이 아니다. 중국도 일본이 1990년대 겪은 불황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일본을 공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올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주도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 보고서엔 민간 대기업의 무분별한 해외 인수합병(M&A)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6월 중국 은행감독위원회가 다롄완다그룹, 안방보험그룹, 하이난항공(HNA)그룹 등 공격적 M&A를 벌인 기업의 대출 상태를 점검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배경도 있지만 이 같은 일본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1980년대 일본이 거품경제 막바지에 ‘트로피 자산’을 무분별하게 사들인 현상이 중국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작동했다.
보고서는 또 △해외 투자 규칙을 정하는 국내법 제정 △해외 투자의 장기적인 실행 가능성과 수익률의 엄격한 조사 △대체 산업이 생기기 전까지 제조업의 해외 이전 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영국 재무부 차관과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을 지낸 짐 오닐은 “중국 정부는 일본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selee@hankyung.com
◆서구권, 일본 저성장 대응법 배우기
201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서양에서는 ‘일본식 모델’의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이 겪은 저성장과 고령화 등이 지금 서구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서구 주요 국가는 만성적 저성장과 오르지 않는 물가 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일본화’되고 있다. 약 20년 앞서 비슷한 문제를 겪은 일본이 지금 이 정도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선방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서구 국가들이 제안하는 해법은 대부분 일본에서도 생각한 것이다. 예컨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쓰고 있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주장하는 ‘구조적 장기침체’ 대응책(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병용)과 가장 가깝다.
부작용도 있지만 어쨌든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이 금융 규제를 강화한 것도 금융위기 후 서구권에서 진행된 양상과 비슷하다.
이민자 증가와 소득 불평등에 따른 포퓰리즘의 득세를 찾아보기 힘든 것 역시 서구권에서 일본을 부러워하는 요인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등 서구 국가들은 포퓰리즘으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소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사회의 단일성을 유지했다. 이는 최근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사회 통합과 안정에는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다만 최근엔 노동력 확충을 위해 이민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일본식 세제도 서구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 전 일본 개혁경제장관은 “일본의 (최고) 상속세율은 55%에 이른다”며 “일본이 계급사회로 가지 않은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일본 기업이 서구식 주주 자본주의 대신 근로자와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문화를 버리지 않은 것은 이들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제약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사회 내 불만을 다독이는 역할도 했다.
◆中은 일본 거품시대 재연 경계
일본의 저성장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서구 국가만이 아니다. 중국도 일본이 1990년대 겪은 불황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일본을 공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올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주도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 보고서엔 민간 대기업의 무분별한 해외 인수합병(M&A)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6월 중국 은행감독위원회가 다롄완다그룹, 안방보험그룹, 하이난항공(HNA)그룹 등 공격적 M&A를 벌인 기업의 대출 상태를 점검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배경도 있지만 이 같은 일본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1980년대 일본이 거품경제 막바지에 ‘트로피 자산’을 무분별하게 사들인 현상이 중국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작동했다.
보고서는 또 △해외 투자 규칙을 정하는 국내법 제정 △해외 투자의 장기적인 실행 가능성과 수익률의 엄격한 조사 △대체 산업이 생기기 전까지 제조업의 해외 이전 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영국 재무부 차관과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을 지낸 짐 오닐은 “중국 정부는 일본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selee@hankyung.com